Editor's Picks
화가의 방 #2
아주 오래된 작품이 우리 앞에 도착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지나서 왔을지 상상해 본 적 있나요? 힘차게 붓질했던 아티스트는 이제 만날 수 없지만, 벽에 걸린 캔버스는 작업하던 순간을 형형히 빛내고 있죠. 시간을 가로질러 프레임 너머 남몰래 분투했을 아티스트를 추적합니다. 자기만의 방에서 치열하게 창작했던 흔적이 보일 거예요. 애정 어린 수집품을 비롯해 사랑과 미움, 억압과 저항, 사치와 궁핍이 공존하던 한때를 우연히 맞닥뜨릴지도 몰라요.
원조 헤비 콜렉션
베르나르 뷔페 1928~1999

❶ 룸 투어
인기와 몰락을 이토록 동시에 겪은 예술가는 또 없을 거예요. 아트 신에 거센 불길처럼 등장한 뷔페는 순식간에 슈퍼스타가 되어 엄청난 부를 쥐었어요. 방에 사들인 콜렉션의 방대한 규모만 봐도 짐작할 수 있죠. 해골 모형과 대형 곤충 표본을 비롯해 보트와 프랑스 남부의 오래된 성까지.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오브제를 모조리 모았거든요. 파리시립근대미술관 관장 ‘에르고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무라카미 다카시, 제프 쿤스보다 훨씬 더 많은 대중이 찾았다.” 음울한 분위기, 물기 없이 마른 인물, 거친 윤곽선처럼 만화 같기도, 그래픽 같기도 한 화풍은 어디서나 눈에 띄었던 거죠. 운전은 못해도 롤스로이스는 살 수 있을 만큼 높던 인기는 곧 사그라 들어요. 미술계 중심이 파리에서 미국으로,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는 구상화에서 형체는 지우고 속성만 남기는 추상화로 옮겨 갔거든요. 유행을 따르지 않았던 그의 작품은 평론가 사이에서도 평이 극단으로 엇갈렸어요. 자기 색깔을 고집한 예술가는 굴하지 않고 방에서 8천 점 이상의 작품을 남깁니다. 요동치는 환경도 창작 욕구를 막을 수 없던 거예요.
❷ 잇템: 물고기 뼈
날카로운 형태에서 영감받던 그는 물고기를 볼 때도 반짝이는 비늘이 아닌 단단한 가시에 매료됐어요. 뼈대를 면밀히 탐구하고 물고기 정물화를 여러 점 남기기도 했답니다.
❸ 작품 싱크로율: 80%
기이한 수집품이 가득한 방은 작품과 사뭇 닮았어요. 서늘한 매력과 기괴함이 공존하죠. 그런데 혹시 그거 아세요? 모든 대상을 뾰족하게 묘사하던 뷔페가 딱 한 인물만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사실! 뷔페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함께 산책했던 아내 ‘애나벨’이에요.
❹ 방에 관한 코멘트
에나벨 뷔페가 남편을 회상하며 남긴 한 마디. “그는 장소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킬 그만의 평온한 피난처를 찾았다.”
단정한 타오름
베르트 모리조 1841~1895

❶ 룸 투어
여성이 화가를 꿈꾸는 일조차 어렵던 시대가 있었어요. 최초의 여성 인상파로 불리는 ‘베르트 모리조’가 활동하던 19세기 후반이 그랬죠. 스승 ‘기사르’는 미술 수업에 열정을 보이던 모리조 자매를 걱정했어요.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자매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그 길은 혁명이나 파국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 있었거든요. 관습과 편견을 뚫고 베르트 모리조는 계속 그림을 그렸어요. 작품 활동이 자유롭지만은 않았죠. 카페, 술집, 공연장 등 밤낮없이 도시를 누빌 수 있던 남성 화가와 달리 정원, 침실, 응접실 등 누릴 수 있는 활동 반경에 제약이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모리조는 일상 공간에서 소재를 찾고 진솔하게 작품으로 풀어냈어요. 그림 어딘가에서 따뜻한 시선이 묻어 나오는 이유는 친밀하고도 가까운 관계를 자주 그렸기 때문이에요. 제한이 있어도 그릴 수 있는 풍경을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 화폭에 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면서 작업을 이어갔어요.
❷ 잇템: 에두아르 마네가 선물한 초상화
마네 작품에 자주 등장했던 인물 중 한 명이 ‘베르트 모리조’예요. 그림 모델이 되어주며 인연을 이어가던 중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했어요. 모리조는 평생 마네가 선물한 초상화를 소장하다 20년이 지난 시점에 자기 작품 안에 그려 넣기도 했어요.
❸ 작품 싱크로율: 70%
다채로운 색채를 보여주고자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요? 공간의 제약 속에서도 늘 새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했을 테죠. 정갈하게 정돈된 방 아래 더 깊고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❹ 방에 관한 작가 코멘트
“이곳에서 찰나의 순간, 스치는 시선, 숨겨진 미소를 포착하는 건 마법 같은 일.”
황야의 모빌
알렉산더 칼더 1898~1976

❶ 룸 투어
조각은 움직일 수 있다! 알렉산더 칼더가 최초의 모빌을 공개하며 만든 개념이에요. 큰 덩어리를 깎거나 작은 덩어리를 점점 쌓아 올리는 식으로 이루어졌던 ‘조각의 역사’에 돌풍이 부는 순간이었죠. 칼더는 공학도 출신답게 역학을 고려한 부품을 섬세하게 연결하고 완전한 균형을 구현했어요. 공기 흐름에 따라 부드럽게 뒤틀리고 회전하는 작품이 탄생한 장소는 코네티컷주 작은 마을 록스베리의 작업실이에요. 층고가 높고 벽 전체가 유리창이라 바람과 햇빛이 통과하는 곳이죠. 이곳의 시작점은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오래된 농가를 구입하여 아내와 함께 안쪽은 검은 페인트로 칠하며 직접 생활 공간을 꾸렸죠. 얼음 보관 창고는 작업실로 탈바꿈했고요. 황야와 녹지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으로 이사할 때 칼더는 알고 있었을까요? 바로 40년 이상을 같은 곳에서 보내게 될 줄 말이에요!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듯 작업에 사용했던 금속 막대와 전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요. 천장에는 가지각색 ‘모빌’이, 바닥에는 ‘스테이빌’이 가득합니다.
❷ 잇템: 나무와 철사
2차 대전으로 ‘판금’을 구하기가 어려워져요. 작업에 주로 사용했던 재료가 부족했죠. 위기는 곧 기회인 법! 그때부터 칼더의 세상은 가볍고 다채롭게 변화해요. 나무와 철사처럼 천연에 가까운 재료를 탐구하고 다양한 크기의 조각을 시도했어요.
❸ 작품과 싱크로율: 90%
실내가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왠지 안정적인 느낌이 들지 않나요? 불규칙으로 가득 차 있지만 완성하면 수평을 이루는 칼더의 작품과 비슷한 구석이 많아요.
❹ 방에 관한 작가 코멘트
“내 작업 방식: 마음가짐. 첫 번째는 기쁨.”
자연 속 메타버스
클로드 모네 1840~1926

❶ 룸 투어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80킬로미터를 더 가면 나타나는 ‘지베르니’. 이제 매년 50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지만, 모네가 처음 발을 디뎠던 1883년엔 고요한 물줄기와 평화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곳이었어요. 후원자 가족까지 떠맡아 얼떨결에 대가족을 이끌게 된 모네는 편히 지낼 수 있는 지역을 찾아다녔죠. 값비싼 파리 생활을 정리하던 도중 발견한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은 산업화 영향을 덜 받아 푸른 자연이 살아 있었어요. 그는 지베르니에 한눈에 반해 땅 3천평을 빌려 연못과 식물이 가득한 물의 정원을 만들어요. 아이리스, 장미, 등나무를 포함해 곳곳에 심은 수백 가지의 꽃은 철마다 생생한 색과 싱그러운 빛을 뿜어냈어요. 집안도 정원 분위기와 어울리도록 산뜻하게 꾸몄죠. 당시 프랑스 패션을 휩쓴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디자인을 싫어했던 그는 거실을 푸르게, 식당을 노랗게 칠했죠. 방에서 시작해 정원에 이르기까지. 지베르니는 모네의 머릿속을 눈앞에 펼쳐낸 그야말로 올인원 메타버스였어요.
❷ 잇템: 수련
그렸던 수련만 2백50점 이상! 작업실 옆 연못에 초록색 아치형 다리를 설치한 뒤 매일 그 풍경을 화폭에 옮겼어요. 빛을 따라 색과 형태가 시시각각 오묘하게 변하는 수련은 몰입의 대상이자 방 벽에 가장 자주 걸어둔 작품의 주인공이었어요.
❸ 작품과 싱크로율: 98%
꿈꾸던 세계관을 현실로 만든 모네는 행복했던 걸까요? 지베르니에 처음 도착했던 마흔셋의 화가는 43년을 더 같은 곳에서 살았거든요. “내가 남긴 최고의 걸작은 나의 정원”이라고 말하면서요.
❹ 방에 관한 작가 코멘트
“나는 지베르니를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