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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icks

화가의 방 

 

완성된 작품 너머의 공간엔 무엇이 있을까요? 손때 묻은 흔적에서 사소한 습관을, 흐트러진 화구에서 인간다움을 찾을 수 있어요. 화풍과 닮은 방의 모습에선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을 거예요. ‘방’은 곧 방을 쓰는 사람의 심리를 반영한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거장으로 불리는 아티스트! 그 방에 함께 들어가 속속들이 살펴봐요. '올타임 완성형’일 것만 같지만, 홀로 캔버스 사이를 서성이며 고뇌하고 창작하던 시간을 문득 발견할지도 몰라요.


 

어지러움 속 묘한 질서 

프랜시스 베이컨 1909~1992 

1974년의 프랜시스 베이컨 / 이미지 출처: Michael Holtz


❶ 룸 투어
작은방에서 발견된 물품만 7천 점 이상. 수천 개의 미술용품과 수백 권의 책을 비롯해 잡지에서 찢어낸 이미지, 자른 캔버스, 빈 샴페인 상자 등이 쏟아져 나왔어요. 이곳에서 보낸 30년이 제법 무겁죠? ‘혼돈 속에도 질서가 있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업실을 두고 나온 말 같아요. 그 무엇도 구별할 수 없을 듯 복잡해 보이지만 작가에겐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창작 도구가 됐거든요. 팔레트 대신 문과 벽에 물감을 짜서 뒤섞는가 하면 구석에 쌓인 케케묵은 먼지를 모아 그림에 바르기도 했어요. 재밌는 점은 1985년, 인터뷰로 방문했던 방송인 ‘멜빈 브래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는 사실. “청소를 시도한 적도 있지만, 혼란스러운 곳에서 작업이 더 잘 된다.”
 

좌: 둥근 거울 앞 베이컨
우: 'Study after Veláz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 / 이미지 출처: francis-bacon.com


❷ 잇템: 둥근 거울
그림을 그리는 동안 프랜시스 베이컨은 늘 거울과 마주 봤어요. 가운데가 옴폭 들어가서 공간이 더 넓어 보이도록 비추며 단 하나뿐인 동료도 작업실에 초대했죠. 바로 자기 자신!
 

❸ 작품과 싱크로율: 89%
인간의 암울함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절로 떠오르는 공간이에요. 산처럼 쌓인 물건만큼 캔버스 위엔 감정의 복잡다단한 면이 활활 살아 있거든요.


❹ 방에 관한 작가 코멘트
“나에게 혼돈은 이미지를 낳는다.”


 

작품 복사 붙여넣기

피에트 몬드리안 1872~1944

1926년 몬드리안의 방 / 이미지 출처: Paul Delbo


❶ 룸 투어
“마술처럼 균형을 유지한다!” 몬드리안의 방에 여러 번 방문했던 네덜란드 기자가 쓴 문장이에요. 점, 선, 면만으로 이미지를 구성한 것처럼 생활 공간도 오직 수평선과 수직선만이 고루 배열된 모습이죠.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무채색만 사용해 꾸민 모습은 사실 작가가 오래 꿈꾸던 그대로이기도 해요. 아트 신에서 자리 잡지 못했던 상황과 1차 대전이 맞물려 런던, 뉴욕 등으로 자주 이주해야 했거든요. 심지어 전혀 통일되지 않은 목제 가구, 이가 나간 샹들리에가 삐걱거리는 공유 스튜디오에서 살기도 했어요. 특유의 치밀한 선과 리듬감 있는 비율과 다르게 무질서한 환경이라니, 상상하기 어렵죠? 그렇게 수십 년을 돌고 돌아 중년이 되어서야 몬드리안은 갖고 싶던 방에 도착했어요. 파리 몽파르나스 역 근처에 있던 이곳은 동료 작가를 초대해 토론하는 몰입형 살롱이 되기도, 최대치의 모던 인테리어를 시도하는 실험실이 되기도 했답니다.
 

좌: 몬드리안 방의 흰 꽃 / 이미지 출처: André Kertész
우: ‘Black, Red, Gray, Yellow, and Blue’ / 이미지 출처: piet-mondrian.org


❷ 잇템: 흰 꽃
우아함을 더하고자 항상 방에 꽃 한 송이를 두었대요. 그러나 꽃과 줄기 전체를 희게 칠해 ‘인공 꽃’으로 만들었어요. 자연과 녹색을 극도로 거부했거든요.
 

❸ 작품과 싱크로율: 98%
화려한 색을 칠한 캔버스가 있다면 아무 무늬 없는 뒷면만 보이도록 뒤집어 놓았어요. 말 그대로 작품 속에 걸어 들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죠.
 

❹ 방에 관한 작가 코멘트
“집은 유색과 무색 평면의 연속이어야 한다.”


 

내가 ‘나’로 존재하는 곳

앙리 마티스 1869~1954

1911년의 마티스 작업실 / 이미지 출처: MoMA


❶ 룸 투어
앙리 마티스는 자기 공간을 사랑했어요. 작업실만이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죠. 작품에도 가족, 화병, 고양이, 금붕어 등 실내에서 볼 법한 소재가 주로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1911년엔 스튜디오를 모티브 삼은 ‘아틀리에 4부작’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지금으로 치면, ‘집돌이’, ‘집순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들이 바로 ‘마티스스러운’ 성향일지도 모르겠어요. 누구보다 빠르게 귀가하지만, 그곳에서 엄청난 세상을 만들고 있을 테니까요. 포근하고 따뜻한 방에서 과감한 붓 터치와 강렬한 색 배합을 야수처럼 거침없이 펼친 마티스처럼요. 그에게 ‘방’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초월해 색채와 구성을 탐구했던 치열한 우주였어요. 대부분을 누워서 보낸 말년에도 색종이를 오리며 자기 색깔을 놓치지 않았죠. 그래서인지 실제론 흰 벽도 그의 그림 속에선 붉은빛 에너지 넘치는 곳이 되었어요.
 

좌: 작가가 실제로 수집한 북아프리카풍 직물 / 이미지 출처: Musée Matisse
우: ‘The Red Studio’ / 이미지 출처: MoMA


❷ 잇템: 패턴 입은 오브제
사실 작가는 이국적인 풍광이 가득한 곳도 좋아했어요. 모로코, 스페인 세비야, 독일 뮌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고유의 색이 강한 도시에서 받은 영감은 실제 애정 어린 수집품에서 발견돼요. 작품 속 독특하고 대담한 패턴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죠.


❸ 작품과 싱크로율: 70%
마티스에겐 어떤 곳도 자기만의 색으로 칠할 힘이 있을 것 같아요.


❹ 방에 관한 작가 코멘트
“작업실은 어린이의 요람 같은 곳이다.”


 

억압을 벗어난 탈피

하이디 부허 1926~1993

스키닝 작업을 하는 1978년의 하이디 부허 / 이미지 출처: Hans Peter Siffert


❶ 룸 투어
최근이 되어서야 진가가 알려진 ‘하이디 부허’는 건축 형태를 빌려 몸을 탐구한 조각가예요. ‘집’과 ‘방’은 아이디어를 그리고 창작을 실현하는 별도의 장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작품이 되었죠. 작가가 직접 만든 ‘스키닝 Skinning’은 실내에 라텍스, 거즈 천을 덧발라 다시 떼어내는 기법이에요. 공간에 인위적으로 피부를 만들고 껍질을 벗기듯 잡아뜯는 과정은 필름으로도 남겨 두었어요. 이 조각과 행위 예술을 하게 된 데는 부허가 살았던 시대상과 깊은 연관이 있어요. 1970년대 스위스는 성별에 따라 머무는 방이 극명하게 갈렸죠. 예를 들어, 서재는 경제를 책임지는 남성의 것, 부엌은 살림하는 여성의 것이었어요. 작가는 딱딱한 전통과 억압된 관습에 작품으로써 반기를 든 겁니다. 성역 같았던 당시 구분법을 폭로하고 탈피하고자 했어요. 성별의 구별을 넘어 자유를 쟁취하려 애썼던 건 온전한 한 인간으로 있을 공간의 의미를 회복하는 과정이었을 거예요.
 

1976년 취리히 작업실의 하이디 부허 / 이미지 출처: heidibucher.com
‘Borg’ / 이미지 출처: Mayo Bucher


❷ 잇템: 뜯긴 자국이 있는 조각
자기 키를 훌쩍 넘는 곳에서 온 힘을 실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해방감이 들 만큼 시원하다가도 너덜너덜한 끝 부분을 보면 왠지 아파요. 깨끗하지 않은 단면이 그간 얼마나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었는지 상상하게 되니까요.


❸ 작품과 싱크로율: 50%
작품과 방의 겉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의미는 완전히 뒤집힌 걸요. 


❹ 방에 관한 작가 코멘트
“We cover and dis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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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원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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