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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 커뮤니케이션, 에가미 에츠
타지에서 오랜 시간 이방인으로 지낸 에가미 에츠 Egami Etsu에게 ’소통’이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 같은 거였어요. 캔버스를 메운 거칠고 굵은 선들이 이를 상징하죠. 하지만 각각의 선들은 고유의 색으로 빛납니다. 소통의 빈틈에서 무지갯빛 희망을 엿볼 수 있죠. 그 어느 때보다 소통 창구가 다양해졌지만 관계의 공허함은 커져가는 요즘, 90년대생 그녀의 작품에 세대를 막론하고 공감하는 이유일 겁니다.

지금 아트 신은 세대교체로 분주합니다. 40대 작가도 젊은 작가 카테고리에 분류됐던 시절이 엊그제였는데 이젠 진짜 어린 작가들이 몰려오고 있죠. 베니스 비엔날레나 아트 바젤, 프리즈 같은 이름난 이벤트에서 1990년대생 작가를 찾는 건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닐 정도죠. 무대의 출연진이 바뀌어버린 요즘, 그중에서도 주연급 인사는 따로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여러 메이저 갤러리와 아트페어를 누비는 에가미 에츠입니다.
1994년생 에가미 에츠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아티스트예요. 도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하고, 미술을 배우기 위해 베이징 중앙미술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석사까지 마쳤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금 독일로 떠나 칼스루에에 미술디자인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갔죠.

예술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지만 이방인의 삶은 절대 녹록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지인처럼 언어를 구사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어눌한 발음으로 놀림을 받기도 했죠. 여러 나라를 전전했던 에츠에게 소통은 크나큰 장벽이었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들 하죠? 에츠도 마찬가지였어요.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작업의 밑바탕으로 삼은 그녀는 금세 세계 아트 신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거듭났으니까요.
에츠의 화면은 굵고 넓은 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일련의 선들은 나란히 평행선을 달리죠. 작가의 작품에서 교차하지 않는 선들은 소통을 상징합니다. 소통의 본질은 화합, 소통의 수단은 언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에츠는 이 모든 걸 ‘단절’로 보았어요. 한 인터뷰에서는 “인간은 가까워지기 위해서가 아닌 서로 간의 거리를 가늠하기 위해 소통한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죠.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어요. 그렇기에 아무리 속 깊은 대화를 해도 완벽한 소통을 하기 어렵습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인과 일본인이 만나면 대화를 할 수 없죠. 타지에서 타인과 커뮤니케이션함에도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던 에츠의 기분은 언제나 평행선과 같았고, 자연스레 작업으로 발현한 것입니다.
캔버스를 채운 무지갯빛 컬러도 같은 맥락입니다. 소통이 단절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한다면 세상은 더 다채로워질 수 있답니다. 서로 다른 색이 모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무지개처럼요. 그래서 에츠는 의사소통에서 느낀 단절을 삭막한 회색이 아닌 다채로운 컬러로 표현했습니다. 완벽한 소통은 어려울지라도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해준다면 공존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죠. 에츠의 그림이 어딘지 모르게 따스한 건, 무지개에 서로를 향한 존중이 깃들어서가 아닐까요?

에가미 에츠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특징은 ‘인물’입니다. 현대 사회의 커뮤니케이션과 인간성에 주목하는 만큼 화면 속 모델은 당연하게도 사람이 되었어요. 사람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최근 발표한 <Star Time> 연작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적 팬데믹으로 외출이 제한되자 에츠는 작업실에서 소설책 읽기에 몰두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군상과 이를 창조한 작가에게 흥미를 느낀 작가는, 예술가답게 그들의 얼굴을 화면에 옮기기 시작했죠. 다자이 오사무, 도스토옙스키, 나스메 소세키 등 여러 작가를 평행선으로 재해석하며 인간 본성을 향한 에츠의 탐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답니다.

현대미술의 특징 중 하나는 다매체입니다. 매체는 표현 의도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에, 작가를 대변하는 분신과도 같아요. 에가미 에츠가 집중하는 매체는 ‘유화’입니다. MFA 학위까지 획득했을 정도로 그녀는 유화에 진심이죠. 사실 유화는 까다로운 재료예요. 말리는 데도 한참이 걸리죠. 그런데도 에츠가 유화를 고수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유화와 많이 견주어지는 아크릴은 유화 모방품에 불과하다고 그녀는 생각해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태도처럼, 재료에서도 오직 본질을 연구하는 에츠의 태도. 참 일관적이죠.
흔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죠. 그만큼 우리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위로받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완벽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음에 공허함을 느끼곤 하죠. 소통의 양면성이 두드러지는 요즘. 평행선에 단절, 무지개에 공존을 담은 에가미 에츠의 작품이 여기저기서 호명되는 건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닐까요?

에디터 최안나
글 이효정(프리랜스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