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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들의 시시콜콜한 ‘썰’-EP 02
어떤 작가는 그림보다 더 ‘걸작스러운’ 인생을 살았어요. 문제를 일으켜 구설에 오르고, 때론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보태져 사실이 뒤틀리기도 했죠. 아티스트들의 사적인 사연 15가지,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TIP 일하기 싫은 날 읽으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01
MICHELANGELO
미켈란젤로의 외모는 형편없었다고 해요. 특히 코가 유난히 휘었는데, 어린 시절 다른 작가 지망생의 작품을 보고 ‘지적질’을 하다가 맞은 흔적이라고 하죠. 제자가 그린 초상화가 있긴 하지만, 스승의 얼굴을 추하게 그릴 수 있었을까요? 미켈란젤로 역시 자화상을 남기지 않아 진실은 알 길이 없죠. 단, 시스티나 성당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에서 장마철 젖은 빨래처럼 흘러내리는 인물이 바로 미켈란젤로 자신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추남 맞나요?

02
JEAN FRANCOIS MILLET
밀레의 걸작 ‘만종’에서 부부가 땅 위에 둔 것은 사실 감자가 아니라는 설이 있습니다. 원래 죽은 자식을 땅에 묻고 기도하는 가난한 농부를 그렸다는 주장이죠.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X-레이로 촬영한 결과 분명히 무언가를 먼저 그린 자국이 있긴 합니다. 다만 학자들은 억측이라고 여겨요. 구도를 잡기 위한 밑그림이지 아기가 담긴 관은 분명 아니라는 거죠.
03
PAUL GAUGUIN
고갱의 여자관계는 엄청나게 복잡했어요. 프랑스에서 활동할 때는 물론 타히티에 머문 시기에도 여러 여자와 만나고 헤어지고, 결혼과 동거를 반복했습니다. 그중엔 불과 열세 살 소녀도 있었어요. 타히티에서 고갱이 보낸 시간을 추적해 보면 그가 여성과 아시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죠.

04
SHIN YOON BOK
신윤복이 여자가 아니냐는 설이 한때 유행했어요. 국내에선 이 가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도 제작된 바 있고요. 인물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다는 둥, 화풍이 여성스럽다는 둥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습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낭설입니다. 고령 신씨 족보에 분명히 남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05
FRANCIS BACON
영국 역사에 프랜시스 베이컨은 두 명 등장합니다. 16세기의 철학자, 그리고 20세기의 화가가 있죠. 둘은 동명이인일 뿐만 아니라 같은 가문 사람이에요. 철학자 베이컨에겐 이복형이 있었는데, 그 후손이 바로 화가 베이컨입니다.
06
JOSEPH BEUYS
플럭서스의 예술가 요셉 보이스는 2차 대전 중 독일 공군 폭격기 부조종사로 복무했어요. 항공기가 격추되어 추락하자 타타르인이 체온 유지를 위해 몸에 기름을 바르고 원단의 일종인 ‘펠트’로 감싸 목숨을 건졌다고 회고했습니다. 이후 펠트와 왁스를 활용해 작품 활동을 했으나 타타르인 이야기는 홀랑 거짓말일 가능성이 커요. 요셉 보이스의 기억과 독일군 전투 기록은 일치하지 않는 데다 증거도 없어요.
07
RAFFAELLO
라파엘로는 추기경의 조카와 한 차례 약혼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죠. 추기경 집안에 비하면 신분이 미천한 제빵사의 딸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미혼으로 살았어요. 라파엘로가 사랑했다는 여인은 ‘라 포르나리나 La Fornarina’라는 그림으로 남아있어요.

08
FRIDA KAHLO
프리다 칼로는 정치적 신념이 매우 뚜렷한 예술가였어요. 공산주의를 지지했고, 멕시코 공산당 당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어요. “나의 소원은 세 가지다.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그리고 혁명가가 되는 것.”
09
EDVARD MUNCH
뭉크는 조금 억울할 것 같아요. 유럽 화가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다작했는데, 맨날 ‘절규’ 한 작품만 거론되니까요. 그는 판화 및 드로잉을 합치면 2천5백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어요. 알코올 중독과 온전하지 못한 정신 건강에도 불구하고 80세까지 장수하며 닥치는 대로 그렸죠.

10
MARCEL DUCHAMP
마르셸 뒤샹은 원래 회화 작가였어요. 그런데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그는 화가로서 좌절한 듯해요. 하루는 항공 박람회를 구경하고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이제 회화는 망했어.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 수 있겠어?” 그로부터 5년 후 그는 뉴욕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소변기를 출품합니다. 작품명은 ‘샘’. 개념미술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죠.
11
CLAUDE MONET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고생했어요. 안과 수술을 받긴 했지만 당시 의학 기술의 한계로 완치하진 못했다고 합니다. 말년에 남긴 작품을 보면 추상화처럼 풍경이 뭉개어져 있는데, 불편한 눈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12
LEE JUNG SUB
근대 서양화가 이중섭은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등장하는 화가 두 명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이름은 노래 가장 끝부분 ‘황소 그림 중섭’으로 나오죠. 다른 한 명은 ‘단원 풍속도’의 김홍도예요.
13
MARC CHAGALL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샤갈의 작품으로 우표로 발행했어요. 샤갈의 출신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인데, 벨라루스에서 태어난 유대계 러시아인이었고, 활동은 프랑스에서 했어요. 세 나라가 자신들의 화가라고 주장하죠. 심지어 유대인인 점을 근거로 훗날 이스라엘까지 합류했습니다.

14
PAIK NAM JUN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역사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과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어요. 이건희 회장은 1987년 백남준을 만난 자리에서 작품 설치에 필요한 텔레비전을 공급하기로 약속합니다. 삼성의 브라운관 TV는 이후 작가의 대표작 ‘다다익선’ 등으로 홍보 효과를 쏠쏠하게 봅니다. 참고로 작가는 그전까지 소니 텔레비전을 사용했어요.

15
NIKI DE SAINT-PHALLE
뷰티 브랜드 ‘라프레리’는 프랑스의 조각가 니키드 생 팔의 후원자이자 친구였어요. 생팔은 협업 형식으로 향수병을 제작했고, 그의 시그니처 컬러였던 ‘코발트블루’가 브랜드 컬러로 채택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죠. 라프레리는 지금도 니키 드 생팔의 회고전을 지원하는 등 옛 우정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