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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범죄 사건 파일
기막힌 아트 크라임 7
고요할 것만 같은 아트 신에도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건은 일어납니다. 하룻밤 사이 2톤짜리 조각상이 감쪽같이 사라지거나 진짜 화가의 앞에서 위작을 진품인 척 호기롭게 판매한 일도 있죠. 잘 알려진 작품일수록 ‘유명세’를 매기듯 더 자주 표적이 되곤 해요. 도난, 위조, 훼손 등 그 유형도 가지각색인 '아트 크라임’. 미술 업계를 뒤집어 놓은 7가지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 봅니다.
01
모나리자가 유명해진 이유
사건 발생일 1911년 8월 21일
장소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작품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범인 빈센초 페루자
분류 도난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던 ‘모나리자’가 사라집니다! 경찰은 즉시 수사에 들어갔죠. “루브르를 불태워야 한다”고 말한 이력이 있는 시인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 파블로 피카소까지 용의자로 지목당했어요. 그러나 사건의 전말은 2년이 흐른 1913년 말에나 허무하게 드러났어요. 범인이 이탈리아 유명 골동품상에게 거래를 시도하다 덜미를 잡혔거든요. 그 이름은 빈센초 페루자. 루브르 직원이자 ‘모나리자’를 보호하는 유리 케이스를 제작한 사람이었어요.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둡죠?


범죄 동기는 불분명하지만 배후 세력과 나름의 '마케팅 전략'이 있었다는 가설이 유력합니다. 페루자가 진품을 훔치고 공범이 가짜 모나리자 여러 점을 부자들에게 팔았다는 주장이죠. 진품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가짜를 산 이들은 모두 자기의 소장작이 진짜라고 믿었을 테니까요. 진실은 글쎄요. 분명한 건 당시 유럽의 모든 신문사가 앞면에 모나리자 도난 사건을 대서특필했다는 거예요. 루브르의 수많은 작품 중 한 점에 불과했던 ‘모나리자’가 유명해서 유명한 그림으로 거듭난 계기가 됐어요.
02
간밤에 사라진 2톤
사건 발생일 2005년 12월 15일
장소 영국 하트퍼드셔주 헨리 무어 재단, 야외 정원
작품 헨리 무어, ‘Reclining Figure 1969-70’
범인 신원 미상 3명
분류 도난

둘레 3.6미터, 무게 2.1톤에 달하는 조각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면 믿을 수 있나요? 인체를 왜곡한 추상 조각으로 알려진 헨리 무어의 작품인데요. 그런데 약 20년 전, 영국 하트퍼드셔주 헨리 무어 재단 야외 정원에 있어야 할 작품이 사라진 일이 있었어요. 재단 관계자는 “어안이 벙벙하고 좌절을 느낀다”라고 말했죠.

범인으로 추정되는 이는 총 3명. CCTV를 피해 움직였지만 딱 한 대에 흔적이 남고 말아요. 모두가 잠든 밤, 크레인과 트럭을 몰고 와 은밀히 조각상을 싣고 가는 모습이 포착됐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작품도, 범인도 찾지 못했어요. 다만 당시 치솟은 청동 가격으로 전후 상황은 유추할 수 있었어요. 영국 전역에서 청동과 구리 소재의 물건이 탈탈 털린 시기였거든요. 현지 경찰은 작품이 녹여져 네덜란드 로테르담을 거쳐 중국 공장으로 흘러 들어갔을 거라고 했는데요. 이 추측이 사실이라면, 우리집 어딘가에 헨리 무어의 흔적이 남아 있을지도요!
03
돌아온 반 고흐
사건 발생일 2020년 3월 30일
장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싱어 라런 미술관
작품 빈센트 반 고흐, ‘봄의 정원’
범인 신원 미상 범죄 집단
분류 도난

코로나로 미술계도 잠잠하던 2020년, 휴관 중이던 암스테르담 싱어 라런 미술관의 두 유리문이 깨집니다. 반 고흐의 ‘봄의 정원’을 훔친 도둑의 소행이었죠. 도난당한 작품은 고흐가 서른 무렵 부모가 살던 곳을 묘사한 초기작으로 추정가만 85억원에 달해요. 네덜란드 흐로닝언 박물관이 소장하다 대여해 준 기간을 노린 건데요. 공교롭게도 고흐의 생일인 3월 30일 새벽에 발생한 일이라 철저한 계획범죄로 보는 의견이 많아요.

범인을 찾지 못하고 3년이 흐른 뒤 2023년 9월, 미술 탐정 아서 브랜드가 인스타그램에 그림의 근황을 알립니다. 파란 이케아 가방에 담긴 채 돌아왔다며 말이죠! 비밀 보장을 요구한 남성이 집으로 찾아와 건넸다는데요. 네덜란드 예술범죄수사대는 회수된 그림이 진품임을 확인했고요. 통신 감청 결과, 한 범죄 집단이 감형 협상을 위해 가져갔다가 처리가 곤란해 돌려준 걸로 추정돼요. 산전수전을 겪은 ‘봄의 정원’은 일부 손상됐지만 복원을 마치고 이케아 가방과 함께 전시 중! 미술 탐정의 인스타그램에 당시가 생생하게 담겨 있으니 구경해 보시길요.
04
프레임만 남은 파리의 걸작 5점
사건 발생일 2010년 5월 20일
장소 프랑스 파리 시립 현대 미술관
작품 파블로 피카소 ‘비둘기와 완두콩’, 앙리 마티스 ‘목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부채를 든 여인’, 조르주 브라크 ‘에스타크의 올리브 나무’, 페르낭 레제 ‘샹들리에가 있는 정물화’ 등 5점
범인 베란 토미치, 장-미셸 코르베즈, 요나단 번
분류 도난
21세기 들어 가장 유명한 미술품 도난 스캔들 중 하나는 프랑스에서 터졌어요. 사건의 예상 피해액만 총 1억유로(한화 약 1천5백억원)에 피카소, 마티스 등 이름만 들어도 값을 가늠하기 어려운 20세기 걸작을 가져갔거든요. '베란 토미치'라는 이름의 범인은 놀랍게도 '피지컬'로 승부했습니다. 미술관 벽을 오르내리는 '암벽 등반 스킬'로 작품을 훔쳐 '파리의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죠. 그는 6일간 새벽마다 미술관에 방문해 경비 동선과 보안 상태를 치밀하게 확인하기도 했어요. 본래 한 점만 떼갈 생각이었다가 경고음조차 울리지 않는 전시장을 보곤 대범하게 네 점을 더 프레임에서 분리합니다.

8개월 만에 그를 잡을 수 있던 건 노숙자 기욤의 역할이 컸어요. 술 취한 토미치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그에게 영웅담처럼 범행을 떠벌렸기 때문이에요. 토미치와 작당한 판매상 두 명도 검거됐는데요. 토미치는 8년형을 선고받지만 반성 대신 판매상이 약속한 커미션만 제때 줬어도 더 빨리 숨었을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어요. 작품의 행방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들은 “그림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진술했는데,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요?
05
2천 점 복사 붙여넣기
사건 발생 시기 1950년~70년대
장소 한 무명 화가의 작업실
작품 프랑스 인상파를 비롯한 유명 화가 1백여 명의 작품 2천 점 이상
범인 톰 키팅
분류 위작 생산

1976년 8월 21일, 런던 <타임스>는 59세 화가의 편지를 공개합니다. 25년간 19세기 풍경화가 사무엘 파머를 비롯해 유명 화가의 작품 2천 점을 위조했다며 고백했죠. 물론 모작 자체가 위법은 아니에요. 화풍을 연구하거나 붓 터치를 연습하는 방식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톰 키팅은 위작을 위작 아닌 척 판매하기도 했다며 문제가 됐죠. 결국 1979년 법정에 서지만 급격한 건강 악화로 재판은 중단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으로 그는 스타가 됐어요. 위조 화가가 되기까지 그의 서사에 사람들이 열광했거든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작가를 꿈꿨지만 생활비를 벌고자 미술품 복원가가 되었죠. 그러나 실력이 아닌 유명세나 학연으로 좌우되는 미술계를 보고 환멸을 느꼈어요. 복수를 하고자 자기만 아는 함정을 배치해 위작을 만듭니다. 19세기 작품을 그릴 때 20세기에 발명된 종이를 사용하거나, 물감 아래 서명을 숨겨 X-ray로 비춰야 드러난다는 식으로요. 결국 톰은 TV 시리즈에도 출연했지만 법원에 갔을 때처럼 건강 문제로 금세 하차해 인기를 오래 누리진 못해요. 그가 남긴 그림 몇 점은 ‘톰 키팅’이라는 본래 이름을 찾아가 지금도 미술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답니다.
06
샤갈 앞에서 팔린 가짜 샤갈
사건 발생일 1967년 어느 날
장소 미국 뉴욕
작품 샤갈의 위작 수채화 3점
범인 데이비드 스타인
분류 위작 생산, 사기
1960년대 뉴욕의 한 갤러리, 말끔한 차림의 미술상이 마르크 샤갈의 신작 3점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캔버스 뒷면엔 진품 인증서도 붙어 있었죠. 갤러리스트와 ‘쿨 거래’를 마친 그는 자리를 떠났어요.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실제 마르크 샤갈이 부인과 함께 우연히 갤러리에 방문했는데요. 갤러리스트는 “방금 당신의 수채화 3점을 샀다”며 작품을 보여줬어요. 그림을 본 샤갈은 눈살을 찌푸리고 외쳤죠. “이 사악한 놈들!”

이 위작 판매 사건은 미술계에서 유명한 ‘데이비드 스타인’의 짓(?)이었어요. 샤갈이 등장한 덕에 그의 위작은 금방 들통났지만, 스타인은 이전부터 사기 명목으로 여러 번 감옥을 오간 바 있었죠. 그가 베껴 그린 작가는 샤갈뿐만 아니라 피카소, 미로, 마티스 등 주로 동시대에서 활동했던 이들이었어요. 공개된 피해 건수만 약 1백 건에 이른다니 상상이 되시나요? 언론인 밀턴 에스테로우는 스타인과 인터뷰를 진행한 적 있는데요. “위작도 예술가에 대한 탐구와 애정이 필요하고, 값비싼 작품을 원하는 이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다”며 그가 생각하는 위작의 가치와 순기능을 설명했어요. 립톤 티백으로 바랜 종이를 연출한다거나 서명을 그리는 등 꽤 철저했다는데, 이쯤 되니 그만의 화풍도 슬쩍 궁금해요.
07
도끼로 7번 찍은 누드화
사건 발생일 1914년 3월 10일
장소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작품 디에고 벨라스케스 ‘로커비 비너스’
범인 매리 리처드슨
분류 훼손

한 세기 전에도 미술관 작품은 ‘테러’ 대상이 됐어요. 거울 속 흐릿한 얼굴과 선명한 알몸이 묘사된 벨라스케스의 비너스도 고기를 써는 도끼로 찍힌 적이 있거든요. 런던 한복판 내셔널 갤러리에서 무려 7번의 난도질을 감행한 인물은 매리 리처드슨이에요. 당시 영국법 기준 미술품 파괴로는 최고 형량인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죠.

리처드슨은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참정권 운동을 벌인 여성을 뜻하는 ‘서프러제트’의 지지자로서 일을 벌였어요. 서프러제트의 리더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체포된 것에 대한 항의였죠. “나는 현대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물인 팽크허스트를 파괴한 정부에 대한 저항으로, 신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파괴하려 했다”라며 그 의도를 면밀히 드러내기도 했답니다. 38년 뒤 한 인터뷰에서 그날을 회상하며 “남성 관객들이 그림 앞에서 하루 종일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은 좋지 않았다”고 덧붙였어요. 아, 비너스의 등은 완벽히 복구되어 지금도 ‘미술품 복원계의 교과서’로 회자되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