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Picks
부업으로 남긴 6개의 마스터피스
천재성 때문일까요, 창작욕 때문일까요? 어떤 작가는 한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아트의 경계를 마구 넘나들었어요. 붓 대신 조각칼을, 회화 대신 디자인을 구상하며 의외의 작품을 남기곤 했죠. 20세기를 휘저은 3명의 아티스트가 벌인 ‘주 종목’ 밖의 프로젝트. 그 뒷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생활의 발견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장 먼저 어느 작품이 생각나세요? 사랑하는 남자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여인(Thinking Of Him), 표적을 명중하는 전투기(Whaam!) 등이 떠오를 거예요. 굵고 검은 윤곽선과 대량 인쇄물에 남는 작은 점 ‘벤데이 닷 Benday Dots’까지 표현해가며 광고와 만화의 한 장면을 다시 크게 그렸죠. 매스미디어를 아트의 영역으로 당겨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성공한 작가로 이름을 남긴 로이 리히텐슈타인. 그는 다소 엉뚱한 프로덕트를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라는 생전의 말처럼 일상적이고 생활에 밀접한 물건을 말이에요.
의자와 오토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팝아트와 추상화의 경계에 선 듯한 그림 또한 많이 남겼어요. 특히 1960년대엔 ‘붓질’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Brushstroke’ 시리즈. 만화가 딕 지오다노가 그린 코믹북 <Strange Suspense Stories>의 한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작업입니다. 1980년대, 그는 기어코 캔버스 밖으로 ‘붓질’을 끄집어냈어요. 붓이 한차례 훑고 지나간 듯한 디자인의 의자와 발 받침대 ‘오토만’을 제작했죠. 총 12개로 제작된 의자는 경매에 나오면 3억 이상의 가격에 팔려나가곤 합니다.
접시와 잔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벌이는 협업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잭슨 차이나’라는 미국 식기 회사와 커피잔, 접시로 구성된 디너웨어를 제작한 적이 있거든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벤데이 닷’이 프린트된 상품이었죠. 대량 생산이라는 시스템에 주목한 아티스트였던 만큼 총 8백 세트나 제작했어요. 당시 판매가는 구성에 따라 40~50달러. 1960년대라는 시기를 고려하면 꽤 고가였지만, 당연히 준비한 수량 모두 순식간에 완판됐습니다. 현재는 가치가 껑충 뛰어 4백만원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어요.
초현실 게임
살바도르 달리
달리는 삶 자체가 ‘초현실주의’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요. 비현실적으로 구부러진 수염을 기르고, 미디어를 통해 기이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현대로 치면 ‘인플루언서’ 같은 인생을 살았죠. 그는 작가주의를 추구하는 동시에 상업적인 아티스트로 활동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어요. 츄파춥스의 브랜드 로고를 디자인하거나 디즈니와 협업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처럼 미술관 밖에서도 그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죠.
타로 카드

1970년대, 영화 <007 죽느냐 사느냐> 제작진은 달리에게 타로 카드 제작을 의뢰했어요. 카드가 서사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서 이왕이면 멋진 비쥬얼을 보여주고 싶었나 봐요. 이미 세계적인 아티스트였던 달리는 타로 카드 샘플을 디자인했습니다만 프로젝트는 무산됐어요. 그가 엄청난 금액을 요구해 제작사에서 거절해버렸거든요. 달리는 개인 작업 삼아 카드 디자인을 계속했어요. 총 72장의 카드를 모두 만들어내자 독일 아트북 전문 출판사 ‘타센 Taschen’은 냉큼 계약을 요청했고, 결국 성사되었죠. 달리의 초현실 타로 카드는 지금도 여러 에디션으로 나눠 계속 판매 중입니다.
소파

어디서 본 적 있는 소파인가요? 그럴 만도 해요. 디자인을 복제한 제품을 여러 곳에서 판매하고 있고, <오스틴 파워> 같은 영화에서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했거든요. 사실 이 소파는 ‘메 웨스트 Mae West’라는 미국 배우의 입술을 표현한 달리의 유산이에요.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후원자 에드워드 제임스의 요청으로 제작한 가구죠. 달리는 립 소파를 만들 당시 편의성과 실용성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고 해요. 보다 빨갛고, 관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새삼 놀라운 점은 이 소파가 만들어진 시기예요. 약 백 년 전에 만들어진 가구를 우린 아직도 모작을 만들어내며 소비하고 있는 셈이죠.
건축적인 리빙템
르 코르뷔지에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가 아니냐고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건축가로 더 유명했을 뿐 수많은 회화와 조각을 만드는 아티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죠. 한 가지 직업이 더 있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가구 디자이너이기도 했어요. 프랑스 출신의 건축가 샬로트 페리앙과 건축 사무소를 차리고 전등, 소파 같은 리빙 아이템도 활발하게 디자인합니다. 건물을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들일 가구까지 만들어내는 사람. 건축가로 한정하기엔 조금 아쉽지 않나요?
소파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무대에 들고나온 소파를 유심히 보신 적이 있나요? 정확한 명칭은 LC2. 소파를 디자인한 르 코르뷔지에의 이름을 따서 지은 모델명이죠. 형태와 소재, 크기에 따라 1번부터 17번까지 나누어져 있는데,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카시나가 1964년 독점 계약권을 체결해 현재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의자는 건축이고, 가구는 부르주아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어요. 부르주아적인 소파라니. 과연 어떤 착석감일지 궁금하지 않나요?
램프

인도 북부에 있는 찬디가르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계획적으로 만든 도시예요. 르 코르뷔지에는 이곳의 설계와 몇몇 건축물의 디자인을 맡았죠. 효율적인 도시 생태, 주거 환경, 인프라를 고려해 철저하게 직선으로 구역을 나눠 공사에 착수했어요. 스케일 큰 건축가는 세심하게도 길에 놓을 전등까지 만들었어요. 콘크리트로 만든 구조물 안에 전구를 넣어 어두운 밤거리를 밝힐 용도였죠. 지금은 실내용 램프로 주로 생산되고, 전구 역시 LED로 교체된 제품까지 시중에 있지만 형태는 변치 않고 여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