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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애호가 8인이 사심으로 고른 ‘초현실적 아름다움’
어떤 대상은 수수께끼처럼 사람을 끌어당겨요.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때론 불쾌하지만 속절없이 빠져들고 말죠.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1924년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문’에서 말합니다. “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기이한 것은 무엇이든 아름다우며, 사실 오직 기이한 것만이 아름답다.” 마치 ‘기이함’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문장이죠. 여러분도 일상 어딘가에서 ‘낯선 아름다움’을 한 번쯤 경험해보셨을 거예요. 그래서 이 주제를 떠올렸고요. 재미로나 미학적으로나 우릴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끈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었거든요.
일상에서, 일터에서 예술을 가까이하는 아트 애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초현실주의 명장면은 무엇인가요? 답변은 장르와 사조를 불문합니다. 빤하지 않아 더 흥미롭죠. 잠시 짧은 전시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생경한 아름다움을 따라가 보시길!
1.
현대카드 큐레이터 김현경의 픽
메렌 오펜하임의 ‘모피잔으로 된 아침식사'

WHY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메렌 오펜하임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가 생각나요. 낯설고 이상한 감각이 깨어나는 것 같았죠. 한 번 상상해보세요. 부드럽고 포근한 털이 입술에 닿는 느낌을요. 모피와 커피잔이라니. 교집합이라곤 없는 두 존재가 만나 빚어내는 기이함이 우리를 초현실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 같지 않나요?”
READ MORE 커피 한 잔 대신 ‘모피 한 잔’을 건네는 이 작품은 피카소의 농담으로 시작됐다는 일화가 있어요. 1936년, 파리의 한 카페에서 오펜하임과 만난 피카소는 그녀가 착용한 모피로 덮인 팔찌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뭐든지 털로 덮으면 좋죠. 털을 덧댄 건 무엇이든 보기 좋으니까요.” 이 말을 들은 오펜하임은 커피잔과 받침을 털로 감싸버렸어요. ‘낯설게 하기’의 특징을 가진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이 탄생한 순간이었죠. 불과 그녀가 스물두 살 때의 일이에요. |
2.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페이퍼 프레스' 대표 박신우의 픽
MTV Identity Collection Clip
WHY “1981년 미국에서 탄생한 음악 방송 채널 MTV는 ‘MTV 스타일’이라고 불릴 만큼 개성 있는 로고 영상을 제작했어요. 스테이션 아이디(Station ID)라고도 불리죠. 그들은 매체를 실험실 삼아 온갖 상상력과 편집 기술을 영상에 적용했어요. 여기에 기괴한 맥락까지 더해져 충격적인 비주얼이 완성되었죠. 어떻게 그대로 전파를 탈 수 있었는지 미스테리 해요”
READ MORE 스테이션 아이디는 채널 이미지와 정보를 셀 애니메이션, 3D그래픽, 클레이 애니메이션,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으로 표현하는 영상 분야예요. 실험 정신 투철했던 MTV의 그것은 이 분야에 독보적이었죠. ‘터무니없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유튜브에 ‘MTV station id’를 검색하면 더 다양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보고 나면 초현실주의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만족감이 따라올 거예요. |
3.
아트 포스터&굿즈숍 ‘르 빠삐에르 le papier shop’ 대표 하세리의 픽
필립 힐스만이 찍은 장 콕토

WHY “장 콕토의 다재다능함을 이토록 잘 묘사한 사진이 있을까요? 사진 속 그는 재킷을 앞뒤로 입고 담배를 피우고, 책을 읽고, 가위를 휘두르는 등 바빠 보여요. 연극인, 화가, 조각가, 소설가, 영화감독, 비평가, 배우 등으로 활동한 올라운더 아티스트다운 모습이죠. 그는 여러 예술 방면에서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발표했어요. 자신의 모든 삶을 상상과 비현실의 공간에서 구현하고자 했죠. 그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성과 합리의 기준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곱게 숨긴 채, 유유히 무의식의 세계를 유영하는 듯 해요”
READ MORE 필립 할스만은 오드리 헵번, 윈저 공작 부부, 마릴린 먼로 등 유명인의 인물사진을 매력적으로 담은 걸로도 명성을 떨쳤지만, 초현실주의 세계관을 실험적인 사진으로 구현한 예술가이기도 했어요. 그중에서도 물을 뿌리고, 고양이를 던지고, 26번의 점프 끝에 완성했다는 달리의 사진은 여기저기서 오마주 될 정도로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죠. 그의 사진 철학에는 2가지 규칙이 있다고 해요. ‘단순하게 유지하되, 특별하게 만들어라’. 그는 이 어려운 걸 해냈어요. 포토샵도 없던 시절에 말이에요. |

4.
HS애드 공간기획자 오해인 픽
한스 벨머의 <인형> 시리즈

WHY “시각적 충격을 주는 미학을 좋아해요. 독일의 초현실주의 작가 한스 벨머의 <인형> 시리즈처럼요. 그는 관절이 움직이는 소녀 마네킹을 해체하고 다시 이어 붙여 기형적 이미지를 완성했어요. 그 속에 숨겨진 무의식적 욕망과 억압의 실마리를 발견할 때 기이하고 섬뜩한 느낌을 받죠. 으으, 불편한 발견!”
READ MORE 작가는 극단적 에로티시즘과 무의식적 욕망을 시험하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이해하고자 했어요. 변태적 에로티시즘으로 가득 차 있는 사진이라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요. 의도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뒤틀었다는 해석도 존재해요. 독일 나치에서 강조한 ‘완벽한 신체’에 대한 반기로 말이죠. |
5.
<하입비스트> 에디터 서은해의 픽
레오노라 캐링턴의 타로 카드 삽화 'The World'

WHY “드라마 <더 글로리> 속 연진이 엄마가 가는 그 점집은 얼마나 용할까. 신비주의에 심취한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 레오노라 캐링턴도 비슷한 질문을 품었을지 몰라요. 남성 중심 초현실주의 예술계에 염증을 느낀 그녀는 멕시코 망명 이후 만난 레메디오스 바로와 함께 초현실과 초자연 사이 어디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요. 주술적이고 마법 같은 화풍으로 그려진 22장의 삽화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죠. 보고 있으면 매혹적인 판타지는 진실로, 거친 현실은 먼지처럼 가볍게 받아들이고 싶은 힘이 차올라요. 같은 사조의 대표 격인 살바도르 달리 또한 자기 아내 갈라를 위해 타로 카드를 만들었을 정도이니, 초현실주의와 미신의 구분도 흐릿해지죠”
READ MORE 캐링턴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온갖 종류의 환상을 겪는 매우 이상한 경험을 하곤 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평생에 걸쳐 초현실주의에 탐닉하고, 이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도 정신적으로 남다른 어린 시절을 겪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녀는 1930년대 초현실주의 운동의 마지막 생존자 중 한 명이었어요. 화가이자 작가였고요. 그림책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는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전시 제목으로도 쓰였답니다. |
6.
음악가 송영남의 픽
김덕수패 사물놀이 <Spirit Of Nature 청배>의 '귀곡'
WHY “‘초현실’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현실(Real)의 위(Sur)' 즉, 실재(real)나 구체적인 사실(fact)을 넘어섰다는 뜻으로 나와요. 음악인으로서 이 의미에 가장 가까운 곡을 꼽자면 김덕수패 사물놀이의 음반 <Spirit Of Nature 청배>의 ‘귀곡’을 얘기하고 싶네요. 청배請拜는 신을 굿판에 청한다는 뜻이고, ‘귀곡’은 초월적인 존재(귀신)를 불러낸다는 의미에요. 무악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죠 . 단, 절대 밤에 혼자 듣지 마시길!”
READ MORE 무속음악을 새로운 해석과 구성으로 재창조한 이 앨범은 2001년 9월에 발표됐어요.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가락과 장단이 우릴 무의식의 세계로 데려가 줍니다. 과연 인간계에 없는 존재를 불러낼 수 있을 것만 같죠. |

7.
<비애티튜드> 편집장 전종현의 픽
샤를마뉴 대제의 왕좌

WHY “독일의 아헨 대성당에는 샤를마뉴 대제의 왕좌가 있어요. 돌로 만든 여섯 단의 계단과 단순한 형태의 대리석 의자가 끝이죠. 신성로마제국을 세운 샤를마뉴 대제 이후 1531년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 서른한 번이 바로 이곳에서 열렸어요. 직선과 곡선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모습은 단순하고 장중하며, 매우 현대적인 미감을 품고 있습니다. 단차가 만든 상승감은 신성한 제국의 정점을 암시하며 동시에 쇠락한 역사를 증언하고요. 시간을 초월한 듯한 왕좌는 존재만으로도 초현실적인 열통을 선사합니다”
READ MORE 이 의자에 얽힌 이야기가 있어요. 1904년 아헨 대성당을 방문한 나폴레옹은 의자 가까이는 갔지만, 앉지는 않았다고 해요. 샤를마뉴의 범접할 수 없는 오라(aura) 때문이었을까요? 권력을 향한 나폴레옹의 욕망이 ‘멈칫’했던 그 순간을 앙리 폴 모트라는 화가가 <샤를마뉴 권좌 앞의 나폴레옹>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나폴레옹에게 샤를마뉴는 시대를 뛰어넘어 극복해야 할 역사의 라이벌이자 멘토였다고 하죠. 샤를마뉴 대제의 존재가 그에겐 초현실 그 자체였을지도요. |

8.
<드롭키친> 에디터 이재현의 픽
<Toilet Paper> 매거진

WHY “기괴하면서도 불경한 이미지 시안이 필요할 때면 잡지 <Toilet Paper>에 실린 사진을 뒤적여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아티스트 마우라치오 카텔란과 광고, 패션계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해 온 사진가 피에르파올로 페라리가 만들어낸 이 매거진은 1호부터 지금까지 속세를 비웃는듯한 시각적 효과로 맑은 정신을 마구 뒤흔들곤 합니다. 기이한 오브제와 어울리지 않게 발랄한 배경 색채를 사용하는 용기 역시 참 초현실적이죠. 지옥에도 클럽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요”
READ MORE 누구나 쉽게 쓰고 버리는 화장실의 휴지 조각처럼, 가볍게 즐기라는 의미로 이름 지은 <토일렛 페이퍼>에는 글이 없어요. 압도적인 이미지가 텍스트를 대신하죠. 마침 창간 멤버인 마우라치오 카텔란의 국내전시가 열리고 있는데요. 올해 7월 16일까지 리움 미술관에서 진행하니 그의 문제적(?) 정신세계를 엿보는 데 유익한 경험이 될 거예요. 성수동에 갈 일이 있다면 얼마 전 론칭한 ‘토일렛페이퍼 뷰티’에 들리는 것도 추천합니다. 매체의 정서를 그대로 담은 짜릿한 비주얼의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이 기다리니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