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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들의 뜻밖의 ‘썰’-EP 05
캔버스 너머 숨겨진 비밀부터 아티스트의 우정과 사랑, 한 우물만 판 화가의 명랑 성공기까지! 아티스트의 10가지 사적인 이야기 다섯 번째 보따리가 열립니다.
✅ Tip 지루한 출퇴근길에 읽는다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01
살바도르 달리
내가 죽은 형의 환생이라고?

괴짜란 말이 찰떡처럼 붙는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에겐 형이 하나 있었어요. 이름도 살바도르로 같았죠. 안타깝게도 달리가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나 형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달리가 5살이 되던 해에 부모는 그를 첫아들의 무덤으로 데려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 줍니다. “넌 죽은 형의 환생이란다.” 먼저 태어난 자식이 죽은 지 9개월 만에 태어난 둘째를 그저 큰 아이의 분신으로 여겼기 때문이죠. 달리는 큰 상처를 받았고, 죄책감을 비롯한 온갖 정신 분열을 앓아요. 유년 시절부터 벌인 온갖 기상천외한 행동과 일탈을 부모에게 온전한 자식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욕망의 표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달리는 형의 초상을 그리며 그 짐을 내려놓아요. 무려 6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02
빈센트 반 고흐
마지막 자화상의 비밀
고흐는 37년의 생애 동안 자화상 43점을 남겼어요. 그림 속 고흐는 모두 조금씩 다른 모습이지만 덥수룩한 수염은 언제나 그의 핼쑥한 볼을 덮고 있죠. 마지막 자화상으로 추측하는 그림은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즈음 그렸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염을 모두 깎은 채 턱선을 드러냈죠. 작품은 어머니 안나의 70번째 생일 선물이에요. 점점 뿌옇게 흐려지는 정신과 팍팍한 삶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 단정하고 평온한 모습만 보여 드리고 싶은 장남의 마음을 담았을 거예요. 그림은 훗날 1998년 뉴욕 경매에서 당시 환율로 약 9백30억원에 거래됐어요. 고흐의 작품 중 네 번째로 비싼 가격이죠. 그 이후로 ‘수염 없는 자화상’이 경매에 나온 적은 없습니다. 어머니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한 간절한 눈빛에 그림의 주인도 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던 건 아닐까요?

우: 변상벽, ‘묘작도' /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03
변상벽
조선 후기 성공한 냥덕후
변상벽은 조선 후기 숙종과 영조의 재위 시기에 활동한 화가예요. 그림 일을 맡아보던 관청 ‘도화서'에 속해 1백여 점 초상화를 남기는 등 실력이 출중한 화원이었어요. 새와 동물을 소재로 한 ‘영모화'로 20대부터 명성이 자자했고 특히 고양이와 닭을 잘 그려 변고양, 변닭이란 별명으로 불렸죠. 화실에는 그림을 주문하려는 사람이 줄을 섰고요. 고양이 두 마리와 참새 여섯 마리를 그린 ‘묘작도'는 그의 대표작. 번쩍이는 눈과 촘촘한 털에 감탄이 절로 나오죠. 그는 대상에 익숙해지기 위해 오랫동안 관찰하고 모습을 익혀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자태를 표현했어요. 고양이 그림으로 명성과 부귀를 모두 얻은 변상벽은 영조의 어진 제작에도 참여합니다. 그 공으로 벼슬을 얻어 곡성 현감까지 지냈다니 진정 고양이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에요.
04
에드워드 호퍼
애처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미국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긴 무명 시절을 겪었어요. 원하지 않는 삽화를 그리며 생계를 꾸려 가던 삶은 아내 조세핀 니비슨을 만나며 완전히 바뀝니다. 호퍼와 같은 뉴욕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화가로 활동하던 그녀는 자신의 전시회에 연인의 그림을 나란히 걸며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알렸죠. 결혼 후엔 남편이 그림에 전념하도록 살림을 도맡고 전시회를 총괄하는 매니저가 되어 줍니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 정보와 기록도 모두 조세핀의 손에서 나왔고요. 반면, 화가 조세핀의 삶은 그렇게 끝나버렸어요. 여기엔 남편 호퍼의 영향이 있었는데요.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그는 아내의 그림을 무시했고 얌전히 가정주부로 살길 바랐습니다. 조세핀이 운전대를 잡았을 땐 두 다리를 잡아 차에서 끌어 내리기까지 했죠. 호퍼의 폭언과 폭행에 그녀도 당하고만 있진 않았어요. 꼬집거나 소리 지르기도 하고 남편을 향한 원망과 분노를 일기에 퍼부었습니다. 부부의 대립과 화해의 반복은 삶이 끝날 때까지 이어져요. 잦은 다툼에도 불구하고 조세핀은 남편의 유일한 여성 모델이 되어 작품 활동을 지원했죠. 여전히 화가로서 존경과 감탄을 느꼈다는 기록을 보니 부부 사이는 두 사람만 알 일인가 봅니다.
05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
‘야간순찰’하게 좀 놔둬라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야간순찰'은 땅과 재산을 지키는 장엄한 시민군을 그린 작품이에요. 회화 표현력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의 보물이지요. 하지만 이 명작은 여러 차례 수모를 당한 이력이 있습니다. 중앙에 그려진 인물이 실제 사람 키와 비슷할 정도로 거대한 그림은 보관 창고에 맞게 좌우 귀퉁이와 위쪽이 잘렸는데요. 당시엔 숱한 일이었다지만 어쩐지 그림의 운명을 예고한 것 같아요. 1911년엔 한 실직자가 국가에 앙심을 품어 구두 수선용 칼로 그림을 찢었고, 1975년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괴한이 그림 아래쪽을 빵칼로 휘둘렀죠. 지그재그로 찢긴 캔버스를 꿰매는 데만 4년이 걸렸어요.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1990년엔 정신 질환자가 산성 액체를 뿌려 그림을 불태우려 했지만, 경비원의 빠른 대처로 겨우 위기를 넘겨요. 최소 25회 복원을 거친 그림은 현재 두꺼운 방탄유리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06
앤디 워홀
Don't #EatLikeAndy

워홀이 와퍼를 먹고 있는 장면은 2019년 미국 슈퍼볼 경기에서 공개된 버거킹 광고예요. 1982년 다큐멘터리 영화를 편집해 만들었죠. ASMR 영상처럼 아무 말 없이 버거를 먹는 워홀은 사실 햄버거도, 고기 패티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의 관심사는 오직 설탕. 잼과 토스트, 잉글리시 머핀, 콘플레이크 시리얼이 주식이었고 동명의 작품으로 유명한 ‘캠벨 수프’를 완전식품으로 여겼죠. 달콤한 과일도 줄지어 그의 입으로 들어갔습니다. 체리를 먹고 나면 한가득 쌓인 씨앗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많은 과일을 먹었는지 들킨다며 그릇을 숨기기에 바빴다는 일화도 있죠. 워홀은 1968년 괴한에게 입은 총상으로 건강이 나빠진 데다가 태생적으로 약한 쓸개 때문에 설탕을 멀리하라는 경고를 받아요. 지방 함량이 높은 초콜릿과 견과류도 금지 대상이었죠. 하지만 그 어떤 경고도 설탕 사랑을 멈추지 못했어요. 결국 워홀은 쓸개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은 뒤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아요.
07
앙리 루소
가본 적 없지만 느낌 아니까

갖가지 녹색을 두른 풀과 나무, 빳빳하게 고개 든 꽃이 이국적인 이곳은 앙리 루소가 그린 정글이에요. 애니메이션 영화 <마다가스카>의 알록달록 풀숲도 루소의 정글에서 모티브를 얻었죠. 너무 생생해 풍경을 바라보며 그린 것 같지만 모두 루소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풍경이에요. 젊은 나이에 잠시 멕시코에 파병된 경험이 있다며 자신을 사실주의 화가라고 부르지만, 그는 정글 탐험은커녕 프랑스 밖을 벗어난 적도 없습니다. 지금에야 클릭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을 보고 들을 수 있다고 해도 1844년생 루소는 대체 어떻게 생생한 정글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그는 파리 식물원과 자연사 박물관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온실을 채운 열대식물과 박제된 동물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루소의 눈엔 살아있는 야생 동물과 바람에 흔들리는 빽빽한 숲이 보였을 거예요. 친구이자 열성 팬인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그림을 향해 “그대의 그림은 멕시코에서 본 광경을 담고 있다. (중략) 초록 바나나 잎 사이로 보이는 붉은 태양”이라는 즉흥시도 읊었죠. 이 정도면 멕시코 다녀왔다는 루소의 허풍을 ‘유사 사실’로 인정합니다.
08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고통받는 성모 마리아

세 여인이 동일한 인물이라면 믿어지나요? 17세기 스페인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성모잉태화'는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는 성모 마리아를 그린 작품이에요. 스페인 발렌시아의 한 수집가 손에 있던 그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흐려져 군데군데 본래의 모습을 잃었죠. 주인은 세월의 흔적을 벗기기 위해 복원 전문가를 찾아가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하필 회화 복원 지식이 전무한 가구 전문가의 손에 맡겨진 것이 문제였어요. 당시 1천2백유로, 우리 돈으로 약 1백6십만원에 진행된 '싸구려' 작업으로 그림의 일부까지 지워지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아요. 뒤늦게 덧칠해 보지만 남은 건 우스꽝스럽게 변한 성모 마리아의 얼굴뿐이었죠. 스페인에선 비슷한 사건이 종종 일어나곤 하는데요. 관련 기술이 없더라도 예술작품 복원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관련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공허하게 맴돌 뿐입니다.
09
후지타 쓰구하루
우윳빛 그림 비법

후지타 쓰구하루는 20세기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크게 성공한 일본 화가예요. 검고 가는 선, 먹물 윤곽이 특징인 일본 화풍과 유화를 결합해 화단의 주목을 받았죠. 무엇보다 눈에 띄었던 요소는 이전에 보지 못한 피부 표현이었어요. 뽀얀 색조는 매끈한 도자기와 진주를 떠오르게 하는데요. 수많은 화가가 같은 색을 내려 했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어요. 작가 또한 살결을 칠할 땐 아무도 화실에 들이지 않았어요.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요.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비밀은 21세기에 와서야 드러나요. 복원 과정에서 얻은 아주 작은 물감 조각을 분석한 성과였죠. 정체는 바로 분필의 주재료인 ‘탄산칼슘’과 활석을 원료로 하는 ‘베이비파우더.' 유럽을 홀렸던 후지타의 우아한 시그니처 컬러의 재료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습니다.
10
야요이 쿠사마 & 조지아 오키프
두 여자의 우정

우: 야요이 쿠사마 / 이미지 출처: Yayoi Kusama Official Website
야요이 쿠사마가 뉴욕행을 결정했을 때 조용히 힘이 되어준 미국 화가가 있었어요. 바로 조지아 오키프입니다. 둘의 인연은 야요이가 일본에서 활동하던 때부터 시작됐어요. 당시 야요이는 여성 작가의 전시란 이유로 단 한 명의 관객도 오지 않는 일본의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해외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서점에서 오키프의 ‘검은 붓꽃'을 마주하고 큰 감명을 받게 됩니다. 그 길로 야요이는 조언을 구하는 편지와 수채화를 오키프에게 부쳤고, 낯선 동양인의 편지에 그녀는 상냥한 답신을 보내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것을 당당히 보여 주라는 메시지였죠. 야요이는 기존 작품을 모두 불태우고 태평양을 건넙니다. 둘의 우정은 미국에서도 계속 이어졌어요. 오키프는 혈혈단신으로 뉴욕에서 버티는 야요이에게 힘이 들면 언제든 자기 집에서 머무르라며 든든한 선배이자 동료가 되어 줍니다. 다만 너무 먼 뉴멕시코주에 있어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요. 그래서 둘은 만났냐고요? 야요이가 미국에서 활동한 지 5년이 지났을 때 오키프가 깜짝 방문하면서 만남은 성사됐답니다. 그 순간 필름이 없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던 것에 야요이는 지금까지 아쉬워한다고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