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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찰칵 
가족사진 현상법

 

최근 가족사진을 찍은 적 있나요? 오붓하게 모인 가족들의 사진을 들춰본 적은요? 배지인 작가는 진주 귀걸이를 한 어머니, 손을 흔드는 언니가 담긴 어린 시절의 가족사진을 캔버스로 소환합니다. 그녀에게 과거는 단지 지나간 시간에만 머물러있지 않아요. 붓을 덧칠하는 ‘지금’과 사진 속 ‘과거’가 포개지며 머릿속에서 잊힌 어느 순간을 다시 감각해보는 통로가 되죠. 마치 타임머신을 타는 것처럼요.


 

🔎인터뷰 미리 보기 
▪️"왠지 자꾸 생각나" 오래된 가족사진에 끌린 이유
▪️30년 전 사진 속에서 발견한 단서는?
▪️사진을 굳이 캔버스에 옮기는 이유요?
▪️가장 아끼는 가족사진은?
▪️9월에 예정된 따끈한 소식

 

배지인 @jiyinbae.painting
가족사진을 통해 바라본 기억을 그려요. 과거 사진과 일상의 순간을 교차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거꾸로 서기’, 2025


얼마 전 ‘드로잉그로잉’ 아트 페어에서 작가님 작품을 봤어요. ‘가족의 과거 사진’을 비롯해 여러 장의 사진을 한 화면에 옮긴다는 설명글이 기억에 남아요. 오래된 사진에 끌린 이유가 있었나요?

지난 사진을 보면 익숙한 이미지도 매번 낯선 장면으로 다가오곤 했어요. 머릿속에선 사라졌지만, 사진으로 박제된 순간을 보면 그 이미지를 새로운 과거로 인식하게 되더라고요. 가령 정리돼 있지 않은 앨범을 뒤적이다가 제 사진을 발견해도 어떤 상황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었어요. 생소하지만 분명 존재했던 순간이 다시 태어나는 거죠.

 

‘드로잉그로잉’ 아트 페어에 전시된 배지인 작가의 작품 ⓒb.frame


보안여관 전시장의 낡은 벽지와 그림의 희뿌연 선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먼지 쌓인 앨범을 펼치는 것 같았어요. 전시는 마무리되었지만, 어떤 작품을 선보였는지 이야기 듣고 싶어요.

한지에 유화 붓을 거칠게 비벼 일부러 보풀을 만든 소품 6점을 전시했어요. 아이의 확대된 손, 어머니의 진주 귀걸이, 스탠드 조명처럼 원본 사진에선 주인공이 아니었던 사물이나 제스처에 집중해 봤어요. 초점이 나간 카메라로 찍은 듯 뭉개진 형상과 불안정한 구도를 표현했죠. 표정을 묘사하지 않고도 감정이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물이에요. 

 

같은 이미지도 어떤 부분을 확대하냐에 따라 다른 의도를 담을 수 있네요. 언제 촬영한 사진에서 영감받은 그림이에요? 

30년이 훌쩍 넘지 않았을까요? 그러고 보니 모두 저 태어나기 전에 찍힌 사진을 보고 그렸네요. 부푼 헤어스타일, 각이 살아 있는 재킷, 실내 소품. 사진 속엔 그 시대를 간접 체험할 힌트가 들어 있어요. 내가 잘 모르는 시간을 감지해 볼 수 있죠. 

 

‘진주 귀걸이’, 2023 
“특히 어머니의 진주 귀걸이는 ‘가족사진’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 여러 번 그렸어요. 진주의 따뜻하면서도 시린 느낌의 광택은 인물 코와 볼에 맺힌 광과 닮았어요”_배지인 작가
‘스탠드’, 2025


배지인이라는 사람에 얽힌 시간을 반추한 기록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붓으로 덧칠하는 동안 프레임 너머 카메라를 든 당시 아버지의 시선을 상상하거나 젊은 어머니를 만나기도 해요. 저한테 그림은 인화된 시간을 매만지는 방법이자,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걸어가 보는 행위예요. 글을 읽을 때, 소장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좋은 구절을 직접 손으로 써보는 것처럼, 사진을 그림으로 그리며 시간을 저장한다고 할까요.

 

위: ‘북 치는 소년’, 2024
아래: ‘북 치는 소년’의 모티프가 된 사진


유독 아끼는 가족사진도 있어요? 어떤 작품에 녹아들었는지도 궁금해요. 

손을 흔드는 언니와 친할아버지가 함께 있는 사진이에요. 지난 6월,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제 뵐 수 없게 되어 더욱 소중한 장면이에요. 한 사진으로 드로잉그로잉에서도 전시한 작품 ‘인사’를 비롯해 여러 점의 드로잉으로 남겼는데, 대형 작업으로도 이어볼까 구상하고 있어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작가가 가장 아끼는 사진. 이를 모티프로 한 한지에 채색한 작품 ‘인사'와 드로잉


우리는 타인의 어린 시절을 보면서 각자가 지닌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잖아요. 가족사진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관객과 어떤 감정을 공유하고 싶나요? 

아름다움과 허무함이요. 아름다움 끝엔 늘 허무함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지나간 시간만 쳐다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근 잘파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태어난 세대) 사이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가족사진을 남기는 것을 하나의 ‘힙’ 문화로 여긴다고 해요. 꾸준히 ‘가족사진’을 다뤄온 입장에선 어떤 생각이 드는지 궁금해요. 

인스타그램에서 과거에 찍은 가족사진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똑같은 복장과 포즈로 재현해 보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 영상이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상징 같았어요.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마음도 자랑거리가 되고, 또 그 마음이 요즘 시대가 진짜 갖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싶어요.

 

‘울지 않는 새’, 2023


작년 연말, 작가님이 인스타그램에 남긴 “내년엔 더 좋은, 더 솔직한 작업을 하고 싶다”라는 말을 남긴 걸 봤어요. ‘더 솔직한 작업’이 뭔지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방황과 실수를 그림에 담는 거예요. 현실적인 고민과 남에 대한 시기를 가지고 작업할 때도 있었어요. 저의 가족사진으로 작업하다 보니 사적인 이야기는 어디까지 공유해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기도 했고요. 뒷걸음질 치며 방황한 흔적이 지난해 소현문에서 연 개인전에 담겼어요. 그때 알게 된 건 전시는 작품을 공개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관람자의 글과 사진으로 남아서 저에게 다른 의미로 되돌아온다는 점이었어요. 응원의 목소리가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갈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앞으로는 더 많은 방황의 흔적을 캔버스에 남겨보고 싶어요. 

 

좌: ‘지는 해와 아이’, 2024
우: ‘지는 해와 아이’의 모티프가 된 사진 


'더 솔직한 그림'을 볼 수 있는 다음 기회는 언제예요?

9월 초 을지로 공간형에서 열 2인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덕분에 골몰하는 여름을 보낼 것 같네요.

 

배지인 작가 작업실 전경
에디터 원윤지
Tag
인터뷰
배지인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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