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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영화의 다섯 순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벽에 무심히 걸려 있는 미술 작품을 발견하곤 해요.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내는 화면 속 그림은 소품 역할을 벗어나 극의 흐름을 이끄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기도 하죠. 다섯 가지 영화와 드라마에서 찾은 ‘숨은’ 그림 이야기를 함께 살펴봐요.


CINEMA_아멜리에

 

용기를 내는 과정

ABOUT 아멜리에는 자신만의 세상에서 고요히 살아가는 카페 종업원이에요. 영화는 따듯한 색감과 부드러운 음악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녀는 언제나 외로움에 둘러싸여 있어요. 사랑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던 아멜리에였지만, 이웃인 뒤페엘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과 타인, 그리고 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이해해요.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살던 그녀가 자신만의 우주에서 한 발짝 걸어 나온 것이죠.

 

 

할아버지가 보여준 그림은 영화처럼 다양한 색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표현하지만, 그 안에서 남들과 섞이지 못하고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한 소녀의 모습은 아멜리에 자신 같았어요. 병약한 몸 때문에 밖으로 잘 나가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그림을 이야기하며 이런 말을 던져요. “행운은 자전거 레이스와 같은 거야. 기다리면 섬광처럼 지나가지. 붙잡을 수 있을 때 꽉 잡지 않으면 후회해.” 남의 행복을 위해 이타적인 삶을 살았던 아멜리에는 정작 자기 행복을 실현할 용기는 내지 못했어요. 르누아르의 그림을 마주한 그는 이제 자기 행복을 찾아가려 합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뱃놀이 일행의 오찬’, 1881

 

👉READ MORE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르누아르는 놀라운 색채 활용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고 싶어 했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작품은 ‘뱃놀이 일행의 오찬’의 모작이에요. 센 강의 사투 섬에 있는 노천카페 ‘메종 푸르네즈’의 떠들썩한 한때를 그리고 있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총 14명은 모두 작가의 지인이라고 해요. 화창한 날, 센 강에서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일행을 그린 작품에서 르누아르만의 화풍을 엿볼 수 있죠.

 

DRAMA_그해 우리는 

 

10년 만에 마주친 추억 

ABOUT 성공한 일러스트 작가 최웅에겐 한 가지 규칙이 있어요. 절대 사람을 그리지 않아요. 과거 친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사랑하던 연수와 이별하며 생긴 마음의 상처가 그림에 스며든 것이죠. 움직이지 않는 건물과 나무만 그리며 공허한 일상을 보내던 그 앞에 10년 만에 나타난 연수는 그를 극적으로 변화시켜요. 전 여자 친구와 재회하며 생긴 변화는 최웅이 어떤 사람인지 은연중에 암시해요.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보고, 사랑을 다시 찾아가는 동안 그가 그리는 그림 속 풍경도 변해가거든요.

 

 

티보 에렘은 <그해 우리는>을 위해 직접 몇몇 작품을 그려 보냈어요. 그의 회화에서 보이는 세심한 작화와 온기는 최웅의 냉정해 보이지만 사려 깊은 성격과 많이 닮은 듯해요. <그해 우리는>은 그가 스스로 정한 규칙을 깨고, 과거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말해요. 최웅과 연수 두 인물의 관계가 변모하는 과정을 엿보면서 말이죠.

 

티보 에렘, ‘사랑하는 여름’, 2021

 

👉READ MORE 런던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티보 에렘 작가는 연필과 잉크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켜 왔어요. 가장 대표적인 장르는 예리한 눈으로 표현한 건축 드로잉이죠.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건축물을 정밀하게 그려내는 것이 매력이예요. ‘완벽주의’로 유명한 작가답게 첫 작품을 완성하는 데 8개월이나 투자했다고 해요. 드라마 <그해 우리는>과 협업 전에도 한국에서 다수의 전시를 개최했을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도 각별합니다.

 

CINEMA_인셉션

 

존재하되 실재하지 않는 세상

ABOUT 목표한 대상의 꿈에서 생각을 훔치는 코브는 자신이 실패한 인물 ‘사이토’로부터 생각을 심는 ‘인셉션’을 역으로 제안받아요. 위험해 보였지만, 이를 완수한다면 아이들과 함께 살도록 조치해 주겠다는 말에 요청을 수락하죠. 생각을 조작하기 위해 코브와 팀원들이 향한 꿈속 세상은 거대한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보여요.

 

 

코브가 아내 멜을 만나는 장면에서 등장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엔 격렬한 감정을 표출하는 듯한 기괴한 얼굴이 등장해요. 꿈속의 꿈을 파고들며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정신없이 넘나드는 영화의 무드와 슬그머니 포개어지죠. 그리고 코브가 겪을 혼란을 암시하기도 하고요. 또한 베이컨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연인 다이어를 낯선 존재처럼 표현해 ‘재창조’한 것처럼, 코브의 아내 멜은 그저 놓지 못하는 기억 안에서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프랜시스 베이컨, ‘조지 다이어의 두상 연구’, 1967

 

👉READ MORE 영국에서 출생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입체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받아 자기 혐오적 트라우마를 본인만의 화풍으로 변모시켰어요. 그는 종교화에서 주로 사용하던 구도를 차용했어요. 다만, ‘신성한 구도’를 폭력과 불안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죠. 형태와 공간의 강렬한 왜곡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어요. 작품 활동을 시작한 초창기엔 금전적으로 어려워 캔버스의 뒷면에 그림을 그렸는데, 훗날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의 시그니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DRAMA_재벌집 막내아들

 

복수는 나의 것

ABOUT 재벌 총수의 비서에서 막내아들이 된 진도준은 회사를 집어삼키기 위한 계획을 펼쳐요. 순양 그룹 사람들은 도준을 저지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국 자멸하고 말죠.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균열은 순양 집안 구성원들의 사이도 갈라놓습니다. 순양 그룹의 부회장 진영기는 자신에게 몰린 위기를 아들 진성준에게 떠넘겨 모면하고자 해요. 진성준의 아내 모현민은 남편을 불러낸 갤러리에서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가리키며 말합니다. 그림 속 아들은 누구인지 생각해보라고 하죠. 그림 때문이었을까요? 진성준은 결국 아버지를 배신해요.

 

 

자신의 아이를 잔혹하게 잡아먹는 모습을 표현한 이 그림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크로노스의 탐욕을 보여주고 있어요. 자신의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죽음에 이르게 한 크로노스는 권세를 유지하고자 자식이 태어날 때마다 잡아먹어 버려요. 결국 제우스에게 패하면서 그의 시대는 끝나고 말아요. 드라마에서 이 그림은 아버지에게 도전하고, 마침내 무너뜨리는 아들의 미래를 예언하는 장치로 쓰여요.

 

프란시스코 고야,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19 ~ 1823

 

👉READ MORE 에스파냐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왕족 초상화를 많이 남긴 궁정 화가였어요. 하지만 병으로 청력을 잃은 후 화풍을 바꾸면서 어둡고 괴이한 작품을 주로 그렸어요. 고야가 말년에 그린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와 ‘곤봉으로 싸우는 사람들’의 경우 이름이 존재하지 않던 작품에 후대 미술 비평가들이 제목을 붙였다고 해요.

 

CINEMA_녹터널 애니멀스

 

과거에서 발신한 증오

ABOUT 거대하고도 화려한 저택, 갤러리 관장으로서의 명예, 완벽한 가족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완벽한 삶을 살아가던 수잔의 앞에 한 소설이 도착하며 영화는 시작해요.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에 매료된 그녀는 ‘야행성 동물’을 뜻하는 책의 제목이 잊고 있던 자신의 별명이라는 사실을, 서적을 보낸 전 남편 에드워드에게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요. 사실 수잔의 환경은 그저 껍데기였어요. 현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있으며, 자신의 사업은 파산 직전이었죠. 그녀는 에드워드가 보낸 소설을 보며 과거 아이를 지우고, 그를 버린 채 현재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껴요. 수잔은 얄밉도록 완벽한 소설을 읽고 에드워드를 만나려 하지만,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요.

 

 

제프 쿤스, 데미언 허스트, 존 커린 등 유명 작가의 작품들은 영화 내에서 미장센으로 활약하며 수잔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요. 동시에 호화로운 저택 안에서 그녀가 얼마나 고독하게 사는지 표현하는 영화적 장치로 활용되기도 하죠. 화려하지만 위태로운 인생. 미술품에 둘러싸여 살던 수잔은 행복했을까요?

 

제프쿤스, ‘Ballon Dog’, 1994 ~ 2000

 

👉READ MORE 풍선 강아지 ‘Balloon Dog’은 가장 주목받는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이에요. 그의 강아지는 미술 경매에서 초고가에 낙찰되면서 뉴스에 자주 등장하기도 해요. 대중문화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로 다양한 크기와 재질의 조각을 만드는 그는 예술을 ‘제프 쿤스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제약을 두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지금까지 그의 방식은 큰 지지를 받고 있죠. 하지만 작품 제작 과정에서 여러 조수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아요.

 

에디터 이예강

사진 오르세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티보 에렘 웹페이지, 벨에어 파인아트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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