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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수집을
인쇄해 드립니다.
진열장이 필요 없는 네버엔딩 ‘이미지 수집’의 세계
🎨 수집에도 수사법이 있다면 이민규 작가(@minkyumen)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방법으로 수집을 꾸며냅니다. ‘모으기’로 시작해 ‘배열’로 완성되는 콜렉팅이랄까요? 공정은 이렇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필요한 이미지 개체를 낚아 작업창에 끌어온 뒤, 데칼코마니형으로 능숙하게 안배하기. 빼곡히 군집을 이룬 이미지는 무늬도, 형태도 본래의 꼴과는 다른 모습을 띱니다. 신선하고 우연한 결과물만큼 재밌는 사실은, 이 수집을 인쇄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연남동에서 중학교 동창 둘과 때론 다투고 화해하며 프린팅 숍 POT(Point of Time)를 끌어가고 있어요. 그곳에 찾아가 남다른 수집 세계를 👀 들여다보고 왔습니다.
“제 수집의 특징은 추상적인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모을 수 있다는 거죠"

인스타그램 피드로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그래픽 디자이너의 수집력은 색다르구나 싶었어요. 작가님에겐 작업창이 곧 진열장인 셈이잖아요. ‘수집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대단한 의도를 갖고 벌인 일은 아니에요. 이 일의 시작에는 저의 즉흥적인 성격 그리고 POT를 함께 운영하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틈틈이 개인 작업을 했는데 제 인스타그램 과거 피드를 보면 아시겠지만, 지금의 수집 작업과는 결이 좀 달랐어요. 콘셉추얼한 면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을 품고 있었죠. 변화가 찾아온 건 친구가 뱉은 한마디가 결정적이었어요. 어느 날 ‘물고기 수집’을 해보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바로 어도비 스톡을 열어 ‘Fish’를 검색했는데, 배열이 잘 된 ‘물고기 png 파일’이 눈에 띄었어요. 디자이너로서 제 장점이 레이아웃을 잘 짜는 거거든요.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어요. 저만의 스타일로 살짝 비틀어 봤죠. 즉석에서 30분 만에 완성했어요.

‘물고기 수집‘에서 소위 말하는 ‘터지는’ 반응이 온 건가요?
하하. 맞아요. 작품 완성 후 인스타그램 광고를 돌렸는데 바이럴이 너무 잘 됐어요. ‘물고기 수집’을 제안한 친구도 피드백을 잘 주는 타입이 아닌데 귀엽다고 칭찬해 줬죠. 인스타그램은 하루 2천원으로도 광고를 돌릴 수 있잖아요. 작업할 때마다 하나씩 광고를 태웠어요.
능숙하게 계획된 작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반전이네요.
인스타그램 ‘좋아요’ 수와 ‘스크랩’ 수를 보면서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수치로 체감하고 나니 방향성이 잡히더라고요. 레이아웃 짜는 건 자신 있으니까 이 장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수집을 본격적으로 해보자! 한 거예요. 처음부터 시리즈로 갈 생각은 없었어요.

디자인에 데칼코마니 방식을 적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 수집에서 중요한 포인트예요. 데칼코마니 배열로 인해 처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이미지가 생성되면서 낯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원래의 속성과는 멀어지고 그래픽적인 매력을 갖추게 되죠.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제 작품을 보실 때, 슬라이드를 마지막까지 넘겨보시면 그 묘미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좌우대칭이다 보니 티셔츠에 인쇄했을 때 안정감을 주는 점도 맘에 들고요.
이미지를 정갈하게 배열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요. 작업을 위한 이미지 소스는 직접 만드나요?
주로 어도비 스톡을 사용해요. 작업 시간은 얼마 안 걸려요. 손이 빠르고, 성격도 급해서 길어봐야 몇 시간이에요.

지금까지 한 작업 중 베스트를 골라본다면요?
글쎄요. 100퍼센트 만족하는 작업은 없는 것 같아요. 대신 의미 있는 걸 고를게요. 제가 학생일 때만 해도 소량 인쇄가 가능한 곳이 잘 없었어요. 직접 디자인한 그래픽 티셔츠가 입고 싶었는데 늘 아쉬웠죠. 그래서 저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 거예요. 학생 30명을 모집해 무료 인쇄 서비스를 진행했죠. 그분들이 제출한 도안으로 ‘학생분들 도안 수집'이라는 작품도 만들었고요. 로봇 같기도, 지도 같기도 한 의외의 이미지가 탄생했어요.

저는 ‘잘 안 쓰는 것들 수집'이 기억에 남아요. 평생 쓰일 일 없는 기호들에 데뷔(?) 기회를 주셨잖아요. (작품보기)
일러스트레이션에 ‘글리프’라고 특수문자를 모아놓은 패널이 있어요. 열어 보면 ‘얘를 언제 쓰지?’ 싶은 것이 가득한데, ‘그럼 지금 써보자!’ 해서 만든 거예요. 하하.
실제로 뭔가를 모으기도 하나요?
어디까지나 그래픽 작업으로서의 수집을 좋아해요. 배열이 잘 된 이미지를 폴더에 많이 저장해 놓긴 했습니다. 혹 나중에 부자가 된다면, 실물을 모으는 성향으로 바뀔 수도 있겠죠?

프린팅 숍 POT는 수집 작업의 연장선으로 봐도 되나요?
3년간 의류 업계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도안도 뽑을 수 있고, 그걸 인쇄해서 제품을 판매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친구들과 함께 뭔가 해보자는 이야기는 전부터 나눴는데, 인쇄기를 사면서 본격적으로 POT가 시작됐죠. ‘물고기 수집'이 그야말로 ‘효자’ 디자인이에요. 인쇄 장면을 찍고 인스타그램 스토리 광고를 돌렸더니 DM으로 문의가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제 수집 시리즈처럼 숍 오픈도 완벽한 플랜을 짜서 시작한 게 아니에요. 뭐든 해봐야 알아요.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고요. 할까 말까 고민할 때는 ‘고'가 맞는 것 같아요. 결국 몸이 힘들어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손님들은 POT에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나요?
그래픽을 섬유에 바로 인쇄하는 DTG(Direct to Garment) 프린팅을 이용할 수 있어요. 제 수집 도안을 선택해도 좋고, 본인 걸 가져오셔도 됩니다. 소량 인쇄가 가능해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거나, 나만의 티셔츠를 갖고 싶은 분이라면 편하게 들러주세요. 온라인 업체와 달리 POT에선 인쇄 과정을 지켜보고, 따끈하게 완성된 제품을 가져가실 수 있어요.

기억에 남는 손님은 없었나요?
제 도안으로 티셔츠 5장을 인쇄해 간 손님이 있어요. 보기에 정말 어린 분이셨거든요. 신기했어요. 새로운 거 나오면 또 인쇄하러 오겠다고, 저의 수집을 ‘수집한다’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아요. 어떤 손님은 제 작업을 3D 영상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색다른 자극을 받았죠.
마치 ‘수집의 연대'를 보는 것 같아요. 뻗어가고 확장되는 수집!
수집이 이어 준 인연들과 점차 더 재밌는 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숍 오픈 후 불과 2~3개월 만에 ‘캡션 서울’에서 팝업 제안을 받았다고요.
네. 감사하게도요. 저희의 가능성을 현장에서 체감한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준비한 티셔츠 30장이 첫날에 다 팔려서 급하게 또 만들어 나갔죠. 7개의 브랜드가 참여했는데, 상호 작용하며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았어요.

작가님과 POT를 드러낼 기회가 꾸준히 늘고 있어요.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어디서 얻나요?
사랑의 힘인 것 같아요. 연애 감정이 아닌 그보다 더 상위 개념의 사랑이요. 최근 깨달은 건데, 같이 하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참 중요하다고 느껴요. 고객과의 신뢰도 중요하지만, 고객만 생각하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POT를 브랜드로 크게 키워나갈 계획인가요?
멀리 보는 걸 잘 못해요. 치밀한 사람도 아니에요. 허황된 꿈은 사람을 게을러지게 하고요. 전 가까운 것만 생각해요. 지금은 이 숍의 한편을 스토어로 꾸리는 게 목표입니다. 9월 안에 견적을 내고 가능하면 올해 안에 더 많은 분과 연이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나에게 수집이란?
음⋯ ‘재미’라는 단어 말곤 떠오르는 게 없네요. 그동안 작업하면서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