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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장미일 뿐이다”
작가 손정민의 관찰법
손정민 작가는 줄곧 사람과 사물 그리고 풍경을 세심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그려왔습니다. “처음에는 각 요소를 개별로 바라보았지만, 지금은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그. 새 전시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에서 한층 듬쑥해진 작가의 시선을 찬찬히 따라가 봤어요.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 같은 말이 반복되는 전시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여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이 쓴 시 Sacred Emily(1931)에 나온 구절이라고 들었는데, 이 문장을 데려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진실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미는 장미일 뿐이다’라는 말은 외적인 형태나 복잡한 상징적인 것에 집착하기보단, 대상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죠. 이번 전시가 사물을 보고 느끼는 방식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는 장난스럽고 기지가 넘치며, 같은 말을 반복해 시적 효과를 높이는 매력이 있어요.
첫 자화상을 공개했어요. 도록의 표지에도 등장하죠. 그리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많은 인물을 그려왔지만, 제 얼굴을 그린 건 작은 연필 드로잉 한 점이 전부였어요. 지금 그 드로잉은 건축가이면서 화가인 최두남 선생님 댁에 걸려있는데요. 벽에 걸린 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어요. ‘언젠가는 페인팅을 해야겠다’ 막연히 생각만 하며 몇 년이 지나갔죠. 어떤 그림을 그리는 데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마침 자화상을 그려보고 싶은 시간이 온 것 같았습니다.

“지금껏 많은 얼굴들을 그리며 정작 내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려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서야 완성한 자화상입니다.” ©jungminson_official
조지아 오키프, 조니 미첼 같은 여성 아티스트의 인물화도 눈에 띄는데요. 작가님이 그리려고 마음먹은 인물들의 공통점이라면요?
모두 예술계에서 상징적인 존재죠. 각자의 분야에서 독창성을 지니고 있고, 현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특별한 시기에 저에게 영향을 많이 주기도 했고요. 흠모의 대상이자 그려보고 싶은 존재였습니다. 주로 여성을 그리는 이유는 늘 흥미롭다고 여겨왔고, 여성에 대한 관심이나 공감 범위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스무 점 중 유일한 드로잉 작품이죠. ‘무제’ 속 주인공은 상상의 인물인가요?
가끔 어떤 인물을 그릴 때, 마음속의 그 누군가가 상상의 인물로 재탄생 하기도 합니다. 대학 때 Anna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생각하며 그리다가 결국엔 또 다른 인물이 되어버린 작품이에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드로잉입니다.

많은 팬이 작가님의 인물화에서 눈동자의 신비로움을 말해요. 굳게 다문 ‘입술'에도 시선이 향하죠. 어쩐지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요. 무표정인 듯하지만 편안하고 따뜻한 인상이고요.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글쎄요. 저도 무척 궁금해요. 편안하고 따뜻한 인상으로 보인다면, 그건 너무 기쁜 일인데요.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누군가를 그릴 때, 슬프거나 기쁘거나 한 제 감정과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담긴다는 거예요. 어쩌면 이 일은 속내가 겉으로 보이는 직업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제 경우, 매거진 일러스트 작업을 보고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됐어요. 아주 오래전이죠. 그리고 여전히 관련 일을 하고 계신 걸 보고 내심 기뻤달까요. 보통 개인 작업으로 바빠지기 시작하면 거절하는 경우도 많은데, 글과 그림을 함께 꾸리는 일에 진심인 분이라고 생각했죠.
아, 그러시군요! 네. 글과 그림이 함께 하는 작업에 애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준비해 <식물 그리고 사람>이라는 책도 출판했고, 펀딩을 통해 드로잉 북도 선보였죠. 바쁘더라도 출판 관련 작업에는 참여하려고 노력해요.

작가님의 포트폴리오 가운데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작업 혹은 프로젝트를 하나 뽑는다면 무엇일까요?
2021년, 더 레퍼런스 서울에서의 전시 <Tenderness>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일 페인팅을 선보인 첫 전시이자, 직접 기획한 전시라 의미가 깊습니다.
국내외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해오셨는데, 언젠가 ‘꼭’ 협업해 보고 싶은 브랜드나 다른 분야의 예술이 있다면요?
앞서 말했듯 글과 그림을 엮는 것에 애정이 있다 보니, 좋은 기회가 있다면 시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R.B. 키타이의 소묘 작업 위에 시인 로버트 크릴리의 시가 얹힌 시화를 본 적이 있는데요. 참 섬세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새로운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정체성이 확실한 브랜드와의 협업은 늘 의미 있고 즐거워요.

“지난해 유월에는 코펜하겐에서 그곳에 사는 친구를 만나 커피를 마시고 강가를 걸으면서 빛에 반짝이는 강물 위에 백조들을 보았어요.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장면이지만,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평화롭다고 느꼈습니다.”
©jungminson_official
작가님을 포털에 검색하면 공통으로 ‘식물, 공간, 사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작가’라고 소개돼요.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이 관심사를 향한 태도에 달라진 점은 없나요? 조금 더 마음이 기우는 쪽이 있다거나요.
처음에는 각 요소를 개별로 바라보았지만, 지금은 이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 작업의 시작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꾸준히 더 깊은 마음이 가는 관심사는 사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변할 수도 있겠지요.

3년 전, 한혜연 스타일리스트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영상을 봤어요.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를 언급하면서 그녀처럼 꾸준히 작업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셨죠.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이유와 그럴 수 있는 동력은 어디서 얻나요?
어떤 행동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결국 하나의 태도가 된다고 하잖아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매일 작업을 한다기보단, 그리는 일 자체가 삶에 임하는 태도가 된 것 같아요. 굳이 이유를 찾자면 나의 몸을 움직여서 재료를 다루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제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제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여기서 동력을 얻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눈앞에서 접할 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평론가 피터 셸달의 말 중 ‘아름다움은 가장 소박한 것이 그 성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문장을 좋아해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름다움이란 때때로 금세 알아볼 수 없고, 쉽게 주어지지 않아요. 일상의 틈에서 찾아내야 하죠. 늘 섬세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설령 지금 힘들고 고단한 시절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말이지요.
한 해가 얼마 안 남았어요. 또 작가님 작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반얀트리 호텔의 연말 장식 아트워크에 참여할 계획이에요. 보시는 분들 모두 따뜻한 연말이 되길 바랍니다.
<𝗥𝗼𝘀𝗲 𝗶𝘀 𝗮 𝗿𝗼𝘀𝗲 𝗶𝘀 𝗮 𝗿𝗼𝘀𝗲 𝗶𝘀 𝗮 𝗿𝗼𝘀𝗲.> 📆 ~11. 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