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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정적에 귀기울이면
길우정 작가는 그림 그리는 과정을 ‘수행’이라고 표현해요.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는 잡음을 감지하고, 그 소리를 잠재우는 과정이 작품에 담기죠. 덧칠을 이어가며 자아의 중심을 잡아가는 동안 막연했던 감정은 윤곽을 드러내며 색을 발합니다. 안다즈 호텔 강남의 서울옥션엑스 전시 공간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작가를 만나 찬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전시 준비가 한창일 때 현장에 오셨다고 들었어요. 작품이 걸릴 공간에서 특히 주의 깊게 보는 점이 있나요?
조명이에요. 이번 전시 공간은 밝아서 좋았지만 빛이 살짝 차가운 느낌이 들었어요. 눈에 띄도록 노란빛까진 아니어도 조금 더 따듯한 무드였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 조정을 부탁드렸어요.
전시작이 모두 ‘자화상’ 시리즈였지만, 소재 차이가 눈에 띄었어요. 리넨뿐만 아니라 목재 위에 그린 그림도 보였거든요.
붓이 닿을 때의 손맛을 느끼며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별도의 표면 처리가 되지 않은 소재를 찾아요. 흰색으로 코팅되고, 깔끔하게 정리된 천을 사용하면 배경색이 지나치게 올라오는가 하면 스트로크도 잘 표현되지 않거든요. 나무를 쓰는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유화가 그려졌을 때의 고유한 맛이 있어요. 몇십 년 뒤엔 결국 썩는다곤 하는데, 아직 경력이 길지 않아 드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사용 가치가 있어요.

이번이 몇 번째 전시예요?
한국에선 처음이에요. 고등학교 때부터 영국에서 지냈어요. RCA(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에 온 지 몇 년 안 됐어요.
여러 학교 중 RCA에 입학한 이유가 궁금해요.
어머니 덕분에 고등학교 때 알게 된 학교예요. 어려서부터 미술을 해오다 보니까 “RCA라는 학교가 있는데, 네가 거기서 공부하면 하면 참 좋겠다”라는 말을 듣곤 했거든요. 학부 이후 ‘그래도 석사까지 해야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여러 곳을 알아보던 중 RCA가 보였어요. 물론 학교 명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졸업생들의 활발한 활동도 고려 사항 중 하나였고요.

그때 보낸 시간으로 삶에서 변한 점이 있었다면요?
학교에 참 다양한 사람이 모여요. 이미 작가인데 입학하는 사람도 있고, 작가 생활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미술과 커리어에 대해 각기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인데, 그들의 고민을 나누며 저의 상황에 대입해 보곤 했어요. 동료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법을 찾아나가는 방법을 보고 배운 거죠. 그리고 극적인 ‘터닝 포인트’도 재학 시기에 찾아왔어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나’라는 의문만 들었던 1학년 과정과 달리 2학년이 되자 거짓말처럼 주제가 잡혔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돌이켜보니 RCA 덕분에 혼란의 시간을 축소할 수 있었어요.

작가님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빗댈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명상’이라고 하고 싶어요. 제가 소리에 굉장히 민감했어요. 작업을 하다가도 소음 때문에 집중력을 잃고. 그래서 ‘이 모든 잡음을 받아들이고, 나름의 방법으로 소화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소음 소화(Digesting Noise)’ 시리즈를 시작했어요. 거기에 삶에서 몰려드는 허무감에 저항하려면 ‘정적이 흐르는 이상적인 내면’이 필요하다는 생각까지 더해져 차차 작품에 반영된 것 같아요.

작업을 거듭할수록 깨닫는 바가 있었다면요?
소음이 없는 공간은 물리적으로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내면의 잡음과 싸우고 있던 거예요. 화가마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관심사를 드러내기보단 내면을 정돈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림을 그려나가게 해요. 붓 터치를 겹겹이 쌓으면서 ‘이거다!’ 싶은 마음이 당도할 때까지 수행하듯 만들어가는 그런 그림이요.

작가가 아닌 관객으로서 그림의 힘을 체감했던 순간이 있나요?
삼촌이 가끔 작품을 구매하는데, “그림을 사는 건 작가 영혼의 일부를 사는 거야”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 ‘가설’이 제 인생에서 실제로 증명된 적이 있었는데요. 홍콩 아트바젤에서 박서보 화백의 ‘묘법’을 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이게 무슨 일이지?’ 싶어 자리를 피했다가 다시 그림 앞에 섰더니 똑같은 일이 일어났어요. 그림 보고 눈물 흘렸다는 사람들 이야기들 들으면 전혀 공감하지 못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예술의 에너지와 가치를 느꼈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위로가 되곤 하잖아요? 그림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제 일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화가로서 꼭 이루고 싶은 바가 무언가요?
사무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꼭 솔직한 답을 내놓고 싶어요. 작품이 사람들 눈앞에 걸리고, 그로 인해 제 생업이 돌아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그림으로 대단한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거창한 생각 같은 건 없어요. 작가로 산다는 사실에 직업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아요. 저 혼자 좋을 일을 하는데 관심을 주는 분들이 있고, 이번처럼 전시 기회도 찾아오고. 이렇게 행복한 직업이 있을까 싶을 뿐이에요.

전시 공간에서 작가님 작품을 접할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뭔가를 더하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작품이 내면의 자화상이다 보니까 그림에 관해 뭐라 말하기가 부끄럽기도 해요. 저도 알아가는 중이에요. 뭘 원하는지, 뭘 더 하고 싶은지. 그저 길우정이라는 사람이 차근차근 나아가는 과정을 지켜봐 주시고, 공감해 주신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돌아올 정적> 📍강남구 논현로 854 안다즈 서울 강남 1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