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mbnail

interviews

우리 각자의 구석 

 

그림과 이야기가 함께하는 순간, 납작하던 평면은 펄떡이는 세계가 됩니다. 구석에 앉은 까마귀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문득 알게 되죠. 그림책은 어린이만을 위한 동화도, 교훈이 필요한 우화도 아닌 모두가 읽을 수 있는 ‘그림책’ 자체라는 것을요. 초록빛 정원이 있는 의왕 터무니책방에서 그림책 작가 ‘조오(@crow_zoo_illustration)’를 만났어요.


 


✔ <나의 구석>이 궁금해? 


미리 보기 작은 까마귀가 귀퉁이에서 등장해 텅 빈 곳을 조금씩 채운다. 소파, 책장, 화분까지! 식물이 자라 작은 나무가 되자 까마귀는 창문을 그리고 오려 내기 시작한다. 과연 볕이 드는 창을 만들 수 있을까?

해외 반응 미국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USBBY) 선정 ‘2024 우수 국제 도서’, 서평 전문 매체 ‘커커스 리뷰’ 선정 ‘2023 올해의 그림책’

책의 묘미 책의 물성을 활용한 작품. 접히고 펼쳐지는 가운데가 ‘구석’이 되어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이어지는 시리즈는 <나의 그늘>

만나서 반가워요. 터무니책방에 오니 마음이 편안하네요.

그렇죠? ‘요즘 시대에 책방이라니 터무니없다’라는 슬로건을 지닌 공간이에요. 독립 출판과 창작물을 소개하죠. 꾸준히 인연을 이어온 곳으로 매주 나와서 일하고 있어요. 
 

터무니책방 풍경. 독립 출판물부터 출판사의 기획이 있는 기성 출판까지 다양한 창작물을 큐레이션한다


작가님 책도 놓여 있겠네요. <나의 구석>을 한 권 더 구매해서 사인을 부탁드릴까 봐요. 올해 ‘미국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USBBY)’의 우수 국제 도서로 선정됐던데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출판사 편집장님한테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땐 얼떨떨했어요. 책을 낸 후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기 어렵거든요.
 

<나의 구석> 중. 까마귀가 가운데로 시선을 몰아간다 


연락도 많이 왔겠어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알고 있어요.

축하를 잔뜩 받았죠. 지극히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책이라 해외 독자도 좋아할 정서일지 의문이 들었어요. 웅크린 까마귀가 소심해 보일 법 한데 공감대가 생기니까 참 신기한 거예요!


출간까지 얼마나 준비하신 거예요?

김장성 작가님의 워크숍이 계기였어요. 기획하고 결과물 전시도 하고 계약과 출간 등 시간만 따지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2년 정도 걸렸어요.   
 

실물 책을 펼친 모습. 책의 접지면을 활용한 형식


그림책 한 권을 선보이려면 시간은 물론 큰 노력이 필요하네요.

예상치 못한 일의 연속이었죠. ‘에이, 누가 출판하고 싶겠어. 자비로 독립 출판해야지’라는 생각으로 그렸어요. 까마귀가 시선을 가운데로 몰아가는 이미지에 넓은 면은 공백으로 두고 책등이 열리고 접히는 중간에 중요한 내용이 다 들어가는 구성이니까요. 그림책의 정석에 가까운 전개 방식은 아니죠.
 

비.프레임에서 처음 공개하는 구상 초기 스케치. 인터뷰 당일 조오 작가는 드로잉북을 여러 권 공개했다


오히려 <나의 구석>에서 책을 만질 수 있는 ‘물성’이 느껴져서 몰입됐어요. 서랍을 열 때처럼 책을 펼치면 진짜 공간이 생기는 듯 해서요.

사실 기획 초기엔 한 면에 한 장면을 그리는 일반적인 형태를 생각했는데 중간에 노선을 바꿨어요.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본래 좋아하던 것으로 거슬러 가야겠다 싶었죠.

 

창작은 하나를 집요하게 파고들다 시작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런 거 있죠? 논리 대신 감각에 먼저 와닿는. 한동안 ‘브루탈리즘’이라고 꿈에서나 봤을 건축 양식을 발견하고 푹 빠졌어요. 화집을 보고 드로잉 엄청나게 했죠. 그렇게 아주 큰 건물에서 ‘구석’이라는 아주 작은 일부로 범위를 좁혀 나갔어요.
 

드로잉북 곳곳에 까마귀가 있다. 작가는 한동안 거대하고 자유로운 건축 양식인 ‘브루탈리즘’에 빠졌다. 브루탈리즘을 반영한 건물이 궁금하다면 여기

 
드로잉북이 참 아름다워요. 매 페이지에 등장하는 작은 새도 까마귀인가요?

맞아요. 위치를 막 계산하고 그린 건 아니에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까마귀가 혼자 이 안에서 움직이며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느낌이랄까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존재네요. 소설가나 만화가가 종종 캐릭터가 생명체처럼 일어나서 서사를 알아서 끌고 가기도 한다며 말했던 것이 떠올라요. 책에 언급되진 않지만, 까마귀의 이름은 뭐예요?

조이 ZOE. 그리스어로 ‘삶’이라는 단어를 그리스 알파벳으로 제타, 오메가, 에타를 합쳐 ‘조이’로 읽거든요. 발음만 들으면 보통 기쁨을 뜻하는 영어 단어 ‘JOY’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갑자기 주인공이 작게만 보이지 않는데요. 삶의 무게가 느껴져요. 많고 많은 새 중에 왜 까마귀였어요?

친구가 “어이, 까마귀!”라고 문득 저를 불렀던 즈음이 시작점이에요. 나중에 왜 까마귀라 불렀냐며 친구한테 다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내가?” 이러더라고요. 진짜 탄생 배경은 영원히 미궁 속에 빠져버렸네요. 사실 제 페르소나로 계속 출연시키는 이유는 내심 그 이미지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에요. 인터넷에 흥미로운 밈도 많잖아요.
 

조오,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중인 까마귀 Work in Progress’


예상을 깨는 동물이네요. 왠지 부정적인 선입견도 더러 있잖아요.

까마귀가 오해를 많이 받는 동물인데 의외의 행동도 자주 하죠. 그래서 많은 분이 반전되는 매력을 흥미롭게 보는 듯 해요. 다른 동물의 먹이를 챙겨주기도 하고, 미끄럼틀을 타면서 놀고. 보다 보면 영리하고 웃기면서 어이없죠. 그래서 좋아요.   

 

그러면 작가님 생각에 자기 자신과 까마귀가 닮은 점도 있어요?

<나의 구석> 속 까마귀처럼 야금야금 물건을 모으기도 하고, 좀 짓궂은 면이 비슷해요. 작가명도 제 성인 ‘조’와 까마귀를 뜻하는 한자 ‘오 烏’를 합친 거예요. 원래는 ‘까마귀’라는 단어 그대로를 쓰고 싶었는데 성과 붙이니까 어감이 조금···
 

시리즈로 이어지는 그림책 <나의 구석>과 <나의 그늘> 중 일부


하하하. 기억에는 확실히 더 잘 남지 않았을까요? 작가님의 SNS 속 그림이나 다른 책에도 까마귀가 자주 등장하던데요. ‘나’를 대표할 캐릭터가 있는 게 부담일 때는 없었어요? 자기 색깔을 단박에 드러낸다는 장점도 있지만, 이미지가 고정될 수도 있는 걱정도 있을 것 같아요.

모두 동일 인물로 비칠까 봐 우려될 때 있어요. <나의 구석>과 <나의 그늘>은 시리즈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맞지만, 다른 책은 개별적인 작품이에요. 말하자면 다른 작품 속 다른 배역을 맡은 거예요. 까마귀는 저의 ‘전속 배우’ 같은 존재거든요.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해결될 고민일지도 모르겠어요. 더 많은 이야기가 쌓이면, 독자 입장에선 각기 다른 내용이라고 구분하게 되니까요.

그렇겠죠? 아직은 까마귀로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대학생 때부터 함께해서 아바타처럼 감정을 대입하기 자연스러운 대상이에요.
 

까마귀의 초기 형태. 독립 출판물 <안녕, 올리>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초기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한데요? 형태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어떤 책을 읽다가 인쇄된 사진을 보고 형태를 잡았어요. 그 속에 있던 그림자가 까마귀 같았거든요. 눈이 없고 부리가 큰 모양이었는데, 대학생 때 뒤늦은 사춘기를 겪어서 당시 감성과 어울리는 선과 색이죠.

 

마음속 ‘흑염룡’이 나왔던 때군요!

네(웃음). 서양화 전공할 당시에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았어요. 커다란 캔버스 앞에 서면 막막하고. 어떤 교수님은 제 그림 보고 “일러스트레이션이냐?”라며 비꼬듯 말씀하셨는데 정말로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어요. 졸업 후에 간 ‘힐스(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가 큰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그곳에서 다양한 작가님을 만났고, ‘아트’에 가까운 책도 자주 접해서 새로운 시선이 생겼죠.
 

조오, 일러스트레이션 ‘하얀 깃털 The White Feather'


익숙하던 지대를 벗어나서 작가님 고유의 색깔을 찾은 거네요.

정말 그래요. 물론 그림책도 장르로서 인정을 얻고 해결해야 할 문턱이 많죠. 선입견이 없다고 확신할 순 없어요. 아이 ‘동’ 자를 쓰는 ‘동화책’과 엄연히 다른데 혼재되어 쓰이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러고 보니 어떤 서점에 가도 그림책과 동화책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물론 두 장르를 모두 가진 책도 있어죠. 하지만 엄연히 구분할 수 있어요. 그림책은 말 그대로 ‘그림’ 위주의 책이에요. 표현 방식도, 느낄 수 있는 감정도 다채롭고요. 파격적인 비주얼, 스릴러와 공포가 나올 수 있죠. 미술관에 걸린 작품과 다를 바가 없을 만큼 밀도 높게 아름다운 모음집도 있어요.
 

까마귀와 빛 묘사가 인상적인 그림책 <나의 그늘>


그림책을 처음 접할 독자에게 가이드가 되는 이야기를 해주면 어때요?

그림책은 어른과 아이, 모든 연령대의 누구든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선택지가 아주 많아서 나만의 세계가 더 넓어지죠. 가방 안에 넣을 수 있는 예술 작품이 될 거예요. 언제든 꺼내 볼 수도 있죠. 도시락처럼요.

 

까마귀 ‘조이’는 앞으로 더 바빠질 예정인가요? 

아마 올해 ‘환경’ 주제의 그림책이 나올 거예요! 까마귀는 그 안을 열심히 누비겠죠? 다시 만날 때 아는 척해주세요. 까마귀 기억력 좋거든요.

 


조오 Zoom-In 🔍

게임 ‘머쉬나리움’ 사운드트랙

요즘 관심사 작은 도자기를 조금씩 만들어 보고 있어요. 그림 속 캐릭터가 3D로 움직이면 더 생동감 있을 것 같거든요!

앞날의 꿈 게임처럼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형태에 흥미가 있어요. ‘머쉬나리움’이라는 게임을 참 좋아하죠. 언젠가 까마귀로도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에디터 원윤지
사진 비.프레임, 작가 제공
Tag
인터뷰
그림책
조오

Discover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