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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미 충분해!
이혜수(@heyheysu) 작가의 그림엔 각진 모서리가 없어요. 하루 종일 회사 생각만 하는 직장인, 아무도 만나기 싫은 날, 세상에 나만 혼자인 기분처럼 씁쓸한 일상도 그녀의 손을 타면 둥글둥글한 에피소드로 둔갑하죠. 유쾌하면서도 따듯한 메시지를 일러스트로 건네던 작가에게 이번에 먼저 이야기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뉴욕 브루클린에서 지금 막 기다렸던 답이 도착했어요.

✅ 미리 알아 보기
| 🔎 About 이혜수 |
| 반려견 더치와 🗽뉴욕 브루클린 살고 있는 🎨 일러스트레이터 |
| SVA, FIT 에서 👩🏻🏫 일러스트레이션 강의 |
|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에 📰 만화 연재 |
| <Self-Love Club> 등 📚일러스트 에세이 2권 집필 |
| K-푸드 없이 못 사는 🇰🇷뼛속까지 한국인 |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어요? If you can't love yourself, how in the hell are you gonna love somebody else?”
4월에 접어든 지도 한참 지났는데, 뉴욕에도 따뜻한 봄이 왔을 것 같아요.
한국은 봄기운이 느껴지나요? 여기는 따뜻해지나 싶더니 갑자기 영하로 떨어졌어요.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는 도시예요.
뉴욕한국문화원 벽화로 작가님을 처음 알았어요. 어떤 인연으로 작업하게 되었나요?
예전 제 작업을 좋게 보고 문화원 관계자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아무래도 벽화 작업을 많이 하고 또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인이다 보니 딱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지요.

예전과 지금의 한국이 작품에 차곡차곡 쌓여있어요. 복주머니, 고려청자에 손가락 하트, 소주, 달고나까지 등장하죠. 타지에서 한국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마친 소감이 궁금해요.
그동안 간과했던 한국 문화의 매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달까요. 지금까지 축적된 전통 유산과 현시대의 문화 콘텐츠가 공존하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고. 미국에 오면서 한국에서 배운 건 좀 잊고 새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한동안 살았는데 새삼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하하.

“굳어있지 말고 물처럼 마음을 비워요. 부러지지 않도록.”
넓은 벽을 채우는 건 캔버스나 종이 위에 그리는 것과 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그게 또 매력이랍니다. 제 그림 하나로 살짝 죽어있는 곳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 행복해요. 물론 육체적으론 조금 고되지만요. 벽화 그린 날은 밤새 온몸이 쑤셔요!
벽화 외에도 일러스트, 만화 그리고 책도 만들고 계시잖아요? 일의 종류가 많은 만큼 하루가 정신없이 흐를 것 같아요. 시간을 어떻게 쪼개어 쓰세요?
저는 좋게 표현하면 자유인이에요. 다른 말로는 계획 없이 마구 하는 타입이란 뜻이죠. 머릿속에 한 주, 한 달 치 큰 계획은 대충 있지만 하루하루 그날에 충실한 편이랄까요. 일어나면 킥복싱 짐에 갔다가 스튜디오로 직행해 종일 작업하고 집에 와요. 단순하죠. 하하.
어쩐지! 인스타그램에서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드리는 캐릭터를 본 적이 있어요. 헤어스타일까지 닮은 걸 보니 자화상 맞죠?
어느 날 그냥 쓱 그렸는데 나 같은 거예요. 그래서 계속 사용하고 있어요.

캐릭터가 하필 분홍색에 나체인 이유가 궁금해요.
분홍색인 건 왠지 부드럽고 로맨틱하잖아요. 강렬하지만 빨강처럼 너무 튀지도 않고요. 캐릭터가 왜 누드인지는 많이들 물어보세요. 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옷 그리는 게 귀찮기도 하고… 그리고 사실 벌거벗은 채로 태어난걸요. We’re born naked!
‘그림이 내 길이구나’라는 생각도 갑자기 찾아왔나요?
좋아하긴 했지만 20대 초중반까진 전업 작가를 꿈꿔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중반이 되니까 불현듯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서웠지만 그렇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네요. 제게 미술은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수단 같아요. 말주변도 없고 낯도 가리거든요. 부끄러움도 많고요. 그림엔 제 속이 훤히 드러나 보여도 두렵지 않아요.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으로 외국행을 선택한 거예요?
네. 런던과 뉴욕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웠어요. 막상 시작하고 보니 그림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저와 잘 맞았어요.

뉴욕은 특히 더 각별하겠어요. 학업과 직업 모두 실현된 곳이니까요. 흔히 뉴욕을 꿈이 이루어지는 도시라고 하잖아요. 어떤가요? 여전히 작가님을 꿈꾸게 하는 곳인가요?
뉴욕은 제게 Lover, 연인 같아요. 정말 사랑해서 이 악물고 하다가도 너무 힘들어 떠나고 싶은, 그런데 단단히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런 상대요.
동양인 여자로 살아가기에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최근 아시아인 혐오 현상이 거세기도 했고요.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바꾸려고 하니까 좋은 점도 분명 있어요. 살아 남기엔 터프하지만 전 뉴욕이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럴리가. 비밀은 어젯밤 헤치운 라면, 치토스 그리고 초콜릿
즐거운 여행도 오래 하다 보면 ‘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오거든요.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던가요?
물론 들죠! 집에 아직까지 세탁기가 없다면 믿으시겠어요? 확정은 아니지만 여기서 조금 더 작업하고 한국과 뉴욕을 왔다 갔다 해 보는 게 플랜 중 하나랍니다.

계획대로 한국에 오시면 사인을 요청하고 싶은 책이 있어요. 첫 일러스트 에세이 <Self-Love Club>이요.
잘됐네요! 올여름에 한국어판이 나오거든요. 아마 가지 않을까요? 이벤트도 하니까 꼭 와 주세요.
정말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그 책으로 위로를 받았을 거예요. 뚝 떨어진 자존감도 숨기지 않고 표현해서 우리 모두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동질감도 들고요. 작가님에게도 자기를 부정하는 시절이 있었나요?
자존감이 추락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건 당연해요. 저도 마찬가지고.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걸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셀프-러브’라는 메시지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어요. 지금 한국은 많이 바뀐 듯한데요. 제가 자랄 때는 다들 자기애의 중요성을 몰랐어요. 언급하는 것조차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칠까 봐 일종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겪으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그게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요. 제가 좋아하는 미국 엔터테이너 루폴 RuPaul의 말을 빌려 볼게요.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어요?”

작가님이 찾은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 궁금해지네요.
소셜 미디어만 봐도 ‘나는 뭐 하고 살고 있는 거야, 지금.’ 같은 생각이 들어요. 남과 비교하며 사는 게 너무 당연한 요즘일수록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시키는지 되새겨요. 하루하루 충실하고 나만의 속도와 노선을 지키면서 마음 튼튼하게 살고 있습니다.
점점 단단해진 태도 덕분일까요?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이후 분명한 성과를 거두었어요.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처럼 저명한 매체에 그림이 실리고 있죠. 전업 작가로서 일정 궤도에 올랐다는 이력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저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왜 이리 힘들까요. 자라온 환경 때문인지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항상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요. 그래서 자꾸 외치는 말이 ‘We’re enough’. 자신을 토닥이면서 ‘잘했다’라고 해요.

하루종일 일 생각뿐인 직장인이 당신 혼자만은 아니라는 위로
스스로 칭찬할 만한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지 않아요? 얼마 전 <The Best Spot to Pee in NYC>가 나왔다고 들었어요. 반려견 더치 Dutch와 ‘볼일 보기 가장 좋은 곳’을 찾아 뉴욕을 구석구석 쏘다닌다는 콘셉트가 재미있어요.
더치를 자주 그리기도 하고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만들다 보니까 자연스레 책으로 이어졌어요. 사실 이 책은 2021년 출판사 ‘후즈갓마이테일’과 한국에 먼저 내고 후에 미국으로 역수출한 케이스랍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출판했으니 분명 행복한 일이죠.
반면 <Pocket Size Guide>는 한국을 다루더라고요. 길거리 음식과 과자, K-슬랭을 소개해 진정한 의미의 ‘현장 밀착형 여행안내서’가 아닌가 해요. 한국에 살아본 자만 알 수 있는 요긴한 꿀팁이 한가득이죠. 주머니에 쏙 들어갈 크기라서 깜찍하기도 하고요.

셀프 출판이다 보니 페이지 수가 적어서 만들기 쉬웠어요. 또, 주머니에 쏙 들어가니까 간편하고 좋지요.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는 계속 만들어서 출판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다음 시리즈도 기대할게요. 보니까 리스트업이 제대로던데요. 작가님의 ‘원픽’ 한국 음식, 최애 간식이 궁금해졌어요.
이거, 가장 어려운 질문입니다! 진부하지만 클래식한 김치찌개요. 간식은 바나나맛 우유? 과자는 하나 딱 못 고를 만큼 다 좋아해요.
‘셀프-러브’, 한국 문화, 작가님의 일상 만사에 이은 다음 주제는 뭐가 될까요?
미정이에요. 개인적으로는 페인팅을 좀 하고 싶어요. 주제 없이 그냥 ‘이거 뭐야’ 싶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혹시 아이디어가 있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저희에게도 제보가 들어오면 꼭 전달할게요. 대신 아이디어를 주는 이들에게 답례 메시지를 먼저 부탁드릴게요. 작가님의 에너지가 전해질 한마디요.
No one is you and that is your power!! 누구도 여러분이 될 수 없답니다. 그게 당신의 힘이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