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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귀엽지 않다
‘개’를 자세히 본 적 있나요? 아티스트 이승희 (@end_of__summer)는 물끄러미 쳐다보는 개의 눈부처에서 ‘나’를 발견합니다. 빨려 들어갈 블랙홀 같기도, 모든 걸 꿰뚫어 보는 심연 같기도 하죠. 귀엽다고만 말하기에 우리 생각보다 개는 훨씬 크고 깊은 존재가 아닐는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개! 작가의 반려견과 나란히 앉아서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

인스타그램 프로필 속 그림이네요! 실제로 보니까 여러 각도에서 감상하게 돼요. 핸드폰 화면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질감까지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신작인데 뒷모습은 사실 저예요. 옷과 의자에 체크무늬를 넣고 거울을 배치해서 혼란스러운 느낌과 상상의 여지를 주고 싶었어요.

작품의 시작점은 무엇이었어요?
‘개 영혼 중 3분의 1은 인간의 영혼’이라는 몽골 설화와 저만의 의심이 뒤섞여 있어요. 스스로 ‘사람’이라고 인지하고 살았던 인물이 문득 거울을 봤는데 저편에 개가 있는 거죠. 오랫동안 여러 마리의 개와 함께 살면서 일었던 궁금증이에요. 사람과 함께 지내니까 자기를 사람이라고 여길지, 개라고 생각할지 혹은 완전히 다른 초월적 존재로 인식할지. 개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러고 보니까 강아지의 속마음이 듣고 싶네요. 가부좌를 튼 ‘개 도사’님이 알려주면 좋겠어요. 위트가 느껴지면서도 사뭇 근엄한 표정이라 뭐든 다 알 것만 같거든요.
‘개 도사’님은 문래예술공장에서 했던 프로젝트 <신과 개의 마음>으로 처음 만났는데요(웃음). 평소에 마주하는 교회의 문장 있죠? ‘신은 당신을 사랑한다’, ‘신은 곳곳에 있다’를 보는데 ‘신’을 ‘개’로 바꾸어도 말이 되는 거예요. 진짜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 세상이 안타까우니까 온 작은 신이 개가 아닐까 싶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신의 속성은 무엇인데요?
너무 어려워요. 하하. 그럴 때 있지 않아요? ‘신이 정말 있다면 이런 일을 생기게 만든다고?’ 그래서 신의 역할보단 존재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저 행복을 빌어주는 조건 없는 사랑처럼요. 아마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지 않을까요? 마음이 곧 세계가 아닐까 싶고.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많이 벌어지니까 또 모를 일이죠. 신과 개에게서 사랑이라는 공통점을 찾은 거네요.
네. 종교를 믿는 형태가 신기하잖아요. ‘합격하게 해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라면서 무언가 바라고 돈을 내죠. 그 광경이 진짜 신이 원하는 모습일지 의문스러워요. 오히려 ‘개’는 부자든 아니든 어떤 환경에서도 인간을 돌보며 살아요.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까 모든 종교를 통합해 보고 싶었어요. 사람이 부여한 신의 이미지와도 결합해 보고요.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와 개를 결합한 조각 ‘영원한 미소’, 개와 새를 합친 ‘개새’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더 알고 싶어요. 왠지 관객 입장에서는 밈으로 받아들였을 법도 해요.
그렇죠. ‘밈’으로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진지한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영원한 미소’는 신라의 유물이 익살스럽게 느껴져서 눈길이 갔어요. 눈매는 부처를 모델링해서 넣었고요. ‘개새’는 속담에서 출발했죠.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옛말이 있는데 요즘엔 다 개가 들어요.

아? 그러네요! 생각지도 못했어요.
어딜 가든 개가 있으니까요. 말은 안 하지만 우리의 모든 걸 알고 있답니다.

신화와 설화 모티프가 자주 보여요. 과거의 맥락에 관심을 둔 계기도 있어요?
현대로 오면서 ‘개’를 소비하는 방식이 너무 가벼워요. 욕처럼 쓰기도 하고. 옛 문화권에서 작동하던 방식은 전혀 다르거든요. 영험한 수호자로 세상에 등장했다가 이제는 쉽게 쓰고 버리는 대상으로 전락했죠. 개를 애교 부리는 존재가 아닌 반대의 모습으로 바라봐도 좋겠어요. 전해 내려왔던 동물의 특별한 능력과 기운을 다시 가져오려고 해요.

(우) ‘Eye In The Sky'
개를 보고 가장 많이 내뱉는 문장은 ‘귀엽다’잖아요. 주변에 흔히 있는 데다가 캐릭터처럼 친숙한 분야에서도 소재로 자주 활용돼요. 작가님의 작업은 ‘개’하면 떠오르는 순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와 대척점에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대상에게서 원하는 느낌과 반대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 부담은 없는지 궁금해요.
중압감은 전혀 없어요. 오히려 제 작업이 유쾌한 코드나 가벼운 분위기로만 해석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존재를 인식하는 또 하나의 방식을 제안하는 거예요.
언뜻 전혀 다른 세상 속 ‘개’를 묘사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가장 본연의, 날것의 모습을 보려는 시도처럼 느껴지네요. 유행처럼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겠어요. 개와 작품 모두 말이에요.
그렇죠. 패션이나 소품처럼 매끄럽게 다듬어진 이미지보다 소외된 부분에 초점을 더 맞추고 싶어요. 결국 ‘타자성’이 중요하죠. 나 말고 다른 삶을 생각하는 마음처럼요. 다른 종이 모여 서로 존중하며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에요. 개를 인간처럼 키우라는 뜻이 아니라 개는 개처럼 인간은 인간처럼.

개처럼 깊게 탐구하고 싶은 동물이 더 있다면요?
최근에 한 마리가 늘어서 무려 여섯 마리가 됐어요! 다른 동물에 눈 돌릴 틈이 없네요(웃음). 실제로 ‘개’를 주제로 계속 표현할 수 있겠냐는 질문도 들어봤어요. 그런데 저는 ‘개’로 들려주고 싶은 말이 아직 많이 남았어요.
푸른 색감이 눈에 띄는데, 컬러 역시 개의 속성과 관련이 있어요?
개의 시야에서 착안했어요. 블루에 가까운 색으로 세상을 본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다른 의미를 더할 때도 많아요. 푸른색은 재밌고 독특하죠. 동트기 전처럼 시간대를 나타내기도 하고 불에서 가장 뜨거운 온도를 드러내기도 해요.


(아래) 2023년 작 ‘End of Summer’
블루 톤은 그대로지만, 개를 표현하는 방식은 많이 달라졌어요. 4~5년 전 작품과 최근작을 비교해도 차이가 확연해요. 예전에는 현실이 기반이 됐다면 요즘엔 SF 서사가 돋보여요.
맞아요. 2020년엔 진짜 내면에서 충돌이 많았어요. 개가 무슨 신 같기도 하면서 일상의 모습도 묻어 있고요. 이제 무엇을 먼저 이야기할지 순서를 정리해 나가려고 해요. 개에 관한 사회 문제도 시시각각 터지는데, 이를 고려해 반려동물 산업의 메커니즘을 말하고 싶어요. 개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읽을 수 있는 계급의 역사처럼 세상의 어두운 이면도 꼭. 지금은 지금의 내가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 이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우선 표현하고 있어요.
많이 공감해요. 같은 이야기도 어떤 맥락에서, 어떤 나이대,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니까요.
저도 잘 익은 작품, 능숙한 기술을 보여주고 싶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단계를 건너뛸 순 없겠다고 깨달았어요. 뭔가 열심히 해보고, 상상력을 펼쳐봐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서투르더라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할 수 있는 걸 하자. 작은 기회도 큰 기회가 될 거라고 믿고요.

기다리면 각자의 시간이 오지 않을까요? 터닝 포인트처럼요.
하하. 그렇겠죠?
캔버스 앞에서는 주로 어떤 감정을 끌고 가는 편이에요?
다 달라요. 슬프기도 하고 웃기도 해요. 재밌는 그림은 낄낄대면서 혼자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신작은 그리면서도 긴장을 많이 했어요. 또 몇 개월씩 걸리는 그림은 작업하다 보면 순간 감정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어요.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갈지 묻고 싶어요.
그렇게 관객의 반응을 살펴보고 싶을 때 어떻게 해요?
전시장에 숨어 있기도 하고 그림 앞에 선 관객을 보며 초를 세기도 해요.

정말요? 혹시 시간을 재는 것에도 의미가 있어요?
예를 들면, 저는 어떤 전시를 꾸리는 데 8개월이 걸렸다면 여기 오는 사람들은 관람할 때 얼마 동안의 시간을 들일까 관찰해요. 또 어떤 그림 앞에 얼마나 머무는지도 살펴봐요.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분이 눈에 띄면 작가라며 소개하고 ‘여기 걸린 그림 중에 최애는 뭐냐’라고 묻기도 해요. 평소엔 내성적인 편인데 전시장에선 뭐랄까요. 어딘가 취한 느낌이랄까요.
뭐든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잖아요. 작업이 아주 잘 되는가 하면 이상하게 안 풀리는 날도 있을 텐데 그럴 땐 어떤 자세로 있는 편인가요?
우선 ‘어떻게 이렇게 나는 그림을 못 그릴 수 있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안 피해요. 나름대로 업 앤 다운이 있다는 걸 알아서 일단 버텨요. 잘 지나가면 또 ‘업’ 되는 날이 있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더 못 견디는 편이에요.

작가로 생활하려면 건강한 마음이 필수 재료이겠어요. 앞으로 어떤 작가로 기억되길 바라요?
안주하지 않고 늘 고민하는 작가. 규격화해서 찍어내는 듯한 느낌이고 싶진 않아요. 작업에 묻어나는 애정이 드러나면 좋겠네요. 작가들끼리 붓 터치도 보면 알거든요. 답습했는지 조금 더 고민했는지.
개와 인간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인간이 개에게, 인간이 인간에게.
휴먼이 휴먼에게는 우리 조금 더 다정해지자고 말하고 싶어요. 영화나 문학을 보면 결국 다정함이 승리하잖아요. 저는 아주 다정한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요. 개에게는 ‘다음에 너 인간 해. 내가 개 할게. 네가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참 궁금하다. 한번 바꿔서 살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