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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익명인

 

아티스트 ‘미스터 미상’은 인간과 노동, 탐욕이 뒤엉킨 세상을 그려요. 왁자지껄한 이미지와 애니메이션 효과로 콜렉터들의 지지를 얻으며 글로벌 디지털 아트 NFT 마켓에서 상위 랭커로 이름을 올리고 있죠. 이름처럼 ‘미상’의 존재로 세상을 관찰하던 그가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방식과 작품의 이면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추를 돌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 멈출 수 있지만, 10년 동안 계속 돌리면 그게 인생이 돼요.“

 

작년 연말에 큰 이벤트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개인전 <The Crowds>가 열려서 잠깐 다녀왔어요.

 

갤러리가 아닌 문화원에서 전시가 열린 거예요?

네. 그런데 갤러리 못지않게 좋은 공간이었어요. 작품을 내거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었더라고요. 장비도 다양하고, 건물도 쾌적하고. 그렇게 일주일 동안 전시 관련 일을 한 후 일주일 정도 여행 삼아 더 머물렀어요.

파리에서 열린 <The Crowds>의 작가 소개 영상 ⬇️


그래도 시간 내어 여행할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해외 다녀오는 게 부담이 되어 꺼리는 편인데, 현지에서 여러분께서 도와주신 덕에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여러모로 정신없는 시간이었겠어요. 지금 한창인 프로젝트가 또 있다고 알고 있거든요. 

‘버닝 소울즈 Burning Souls’라고, 작품을 구입한 콜렉터들에게 뭔가를 선물하고 싶어서 기획했어요.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별도의 작품을 드리는 리워드 성격의 프로젝트예요. 1백 개 정도 완성되면 끝날 거라고 공지했고, 이제 70개 좀 넘게 나왔네요. 이전에 펼친 ‘고스트 프로젝트 GhostsProject’를 포함해 개별 캐릭터 단위의 작품을 몇 년째 만들고 있는데, 모두 마무리하면 커리어 초반에 했던 ‘큰 장면’ 제작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Modern Life is Rubbish 시리즈’처럼요.
 

‘Burning Souls’ 프로젝트 캠페인


작가님 작품 중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가 대부분 ‘Modern Life is Rubbish’ 시리즈에 속한 그림이긴 해요. 노동에 도구화된 사람들이 치고받고, 얽히고설키는 모습이 적잖이 강렬했거든요. 하지만 정작 작품에 담긴 메시지에만 주목하다 보니 놓치는 바가 많겠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그림을 논설문처럼 ‘읽고’ 있었어요.

옛날에 한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긴 해요. 사회상에 대한 반영 같은 이야기보단 회화적인 특성에도 주목해 주시면 좋겠다고. 사실 그림에 내러티브가 없는 게 아니라 직설적인 이미지로 이미 다 보여준 것 같아 더 할 말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아 그러면 안 되는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해요. 분명 목적을 설정하고 그림을 그렸을 텐데, 한 번 더 설명 못할 일이었나 싶죠. 물론 색감이나 구도, 이미지의 배치처럼 그림 안에서의 문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 변함없지만요.

 

내러티브와 회화 기법의 조화 덕분인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명언이 떠올라요. 각각의 캐릭터를 뜯어보면 괴로워 보이지만, 작품 전체의 색조와 무드는 화려하고 유쾌하거든요.

그런가요? ‘세상을 멀리서 바라보면 어떤 풍경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빌딩 위에서 도시를 바라보며 나름의 정의를 하려는 마음으로요.
 

Modern Life is Rubbish 시리즈 중 ‘Pantheon’


작품 내에서 ‘미상’이라는 캐릭터의 활약도 ‘풍경의 디테일’에 한몫하는 것 같아요. 거대한 통치자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등 질서를 거역하는 행위를 하더라고요. 노란 재킷을 걸치고 빨간 얼굴을 해서 작게 등장해도 눈에 잘 띄어요.

‘Modern Life is Rubbish’의 테마를 고려했을 때 파란색이 메인 컬러로 적합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보색 계열인 노란 옷을 입혔죠. 캐릭터 디자인은 몇몇 래퍼런스를 참고했어요. 그래픽 노블 <왓치맨> 혹시 보셨어요? 거기 나오는 로어셰크 Rorschach와 영화 <딕 트레이시>의 주인공, 그리고 20세기 초 미국이 경제 대공황에 빠진 시절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힌트를 얻었어요.
 

캐릭터 ‘Mr Misang’


인물 외에도 첫눈에 들어오는 요소가 하나 더 있어요. 문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더라고요. ‘정시 출근’ 같은 한국어가 아주 크게 쓰여 있죠. ‘일해도 집은 못~사’처럼 냉소적인 글귀가 곳곳에 작게 보이기도 하고요. 외국인 콜렉터가 대다수일 텐데 이해하지 못할 한글을 표기하는 이유가 있나요?

전혀요. 만약 중국어, 일본어, 아랍어에도 지식이 있었다면 분명 넣었을 거예요. 글자는 시각적인 장식 요소에 불과해요. 텍스트를 모조리 빼도 작품 서사엔 별로 문제가 없어요.
 

Modern Life is Rubbish 시리즈 중 ‘Company Entrance’


그럼 지금까지의 작품 중 서사의 완성도와 비주얼을 아울러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뭐예요?

애착이라는 게… 어렵네요. 질문에서 좀 벗어난 답을 해도 괜찮겠죠?

 

물론이죠.

결과물을 자평하는 종합적인 기준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대신 반드시 지키려는 수칙이 있어요. 지난 작품을 반드시 능가하는 것을 만들겠다는 태도예요. 전작에서 마음에 걸렸던 바가 있으면 반드시 개선하려고 하고, 더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올 때까지 집중하고. 특정한 작품에 대한 애정보단 더 좋은 결과를 내보이려는 의지에 애착이 있다고 하고 싶어요.

 

미스터 미상이라는 브랜드의 슬로건이자 한 직업인이 설정한 직업 윤리 같네요.

오랫동안 프리랜스 애니메이터, 일러스트레이터, 그러니까 상업 작가로 살았어요. 내러티브나 세계관의 설정이 첫 번째 목표가 아니라 ‘건 바이 건’의 연속이었죠. 기술적으로 보완을 반복하고 개선점을 찾아 다음 작업에 적용하면 얼마든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단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했어요. 그때의 생각을 지금도 유지하는 셈이죠. 
 

좌: ‘Happiness Trap’
우: ‘Do not feed the Horse’


상업 작가로 일을 시작한 줄은 몰랐어요. 

2010년대 초반부터 했어요. 장난감 패키지 제작부터 별걸 다 만들었죠. 그때만 해도 인생 플랜에 전업 작가라는 옵션은 아예 없었어요. 그런 세계가 있단 것도 몰랐고.

 

커리어가 바뀐 만큼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을 것 같아요.

글쎄요. 의뢰받은 일을 하는 작가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판매하는 작가로 직업 노선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작품의 양은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최근 2~3년 동안 그린 작품 수가 그 전에 그린 10년 치보다 훨씬 많아요.

 

그게 가능하던가요?

작품 만드는 데만 온 시간을 집중하니까. 과장 조금 보태면 하루도 안 쉬고 지금까지 한 호흡으로 일했어요. 일과 여가 구분 없이 종일 매달리면서 말이에요.

 

Modern Life is Rubbish 시리즈 중 ‘Odd Dream’


멀리 보자면 누적된 스트레스를 풀어가며 작업해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오로지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밤에 술 한잔씩 하곤 하지만 그게 스트레스 해소 수단인지는 모르겠어요.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잖아요? 저는 압도적으로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인 것 같아요. 이것도 분명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일하는 사람에겐 미적 감각 같은 재능보다 훨씬 중요한 능력이에요.

 

아무리 내구성이 강하다고 해도 ‘번아웃’이 오고, 지칠 법도 하지 않아요? 미술에 대한 무한한 애정 없이는 도무지 불가능한 이야기 같아서요.

에디터님은 일이 좋아서 하세요?

 

답 안 할래요. 하하. 

아마 공감하실 거예요. ‘관성’으로 일하는 거죠. 추를 돌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 얼마든 중단할 수 있지만, 10년 동안 계속 돌리면 그게 인생이 되는 것 같아요.
 

 Álvaro Palma가 디렉팅하고 Mr Misang이 일러스트를 맡은
‘SuperSize Them’ 시리즈 중 ‘Wendy’s'


작업 외에 다른 일이 파고들 틈이 없겠어요.

취미가 딱 하나 있긴 했어요. 여기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왕복 2시간 정도 걸려요. 갔다 오면 그나마 기분이 상쾌해지는데 그마저도 바빠서 3년 전부터 끊겼어요. 지금은 별다르게 시간 내어서 하는 일도 없고, 사는 물건도 없고.

 

작품이 엄청나게 많은 사물로 채워져 있어서 ‘맥시멀리스트’가 아닐까라고 비약 섞인 추측을 해봤는데, 역시 틀렸네요. 

작업실에 책상, PC, 큰 태블릿만 있어요. 신발도 오늘 신고 나온 샌들 포함해서 운동화 하나, 구두 하나 이렇게 세 켤레가 전부예요. 물건을 싫어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뭘 들이고 싶지 않아요. 
 

Modern Life is Rubbish 시리즈 중 ‘Packed Subway’


물욕이 정말 없나 봐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제 손에 들어오는 순간 어쨌든 신경 써서 어딘가에 보관해야 하고, 하다못해 먼지라도 털어줘야 하잖아요. 아무 쓸모 없이 장식하려고 두는 아이템, 특히 ‘예쁨’ 때문에 ‘기능’을 포기한 물건은 정말 참을 수가 없어요. 

 

욕심 같아선 ‘작가의 방’을 주제로 작업실까지 촬영하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기획 의도가 엇나갔겠는데요?

하하. 그림으로만 말하는 신원 미상의 작가로 남고 싶은데요? 제 이름처럼.

에디터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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