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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는 포근함

 

스산한 기운에 온기가 간절하던 올해의 끝, 전시가 진행 중인 노들갤러리에서 아티스트 김아야(@_studio_yeon)를 만났어요. 작가는 ‘순간의 감정’을 포근한 섬유로 표현하죠. 퍼즐을 짜 맞추듯 여러 색감의 실을 자르고 뭉치며 작품을 완성해요. 왠지 손끝으로 더 느껴보고 싶은 그 세계는 한껏 웅크린 동물 같기도, 온화한 식물 같기도 합니다. 그가 ‘포근함’을 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과 감정은 서로 닮았어요. 실을 여러 가닥 합친 모양은 감정의 복합적인 면과 비슷해요. 팽팽하게 잡아당길 때는 긴장감이, 늘어뜨릴 때는 포근함이 떠오르죠. 얼기설기 뒤엉킬 때는 뒤얽힌 마음 그대로예요. ‘실’이 주는 의미는 커요.”  - 김아야 -
 

‘기원’


이번 전시 <노들섬에서 예술을 음미하기>에 나온 작품 수가 꽤 많아요. 

다른 예술가와 함께하는 공모 전시인데, 뽑히고 나니 예상보다 할당된 공간이 넓었어요. 어떻게 꾸릴지 고민하다가 사계절을 담아 봤어요. 봄부터 시작해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으로 돌아오는 순서예요. 
 

노들갤러리에서 열린 신진예술가 공모전 <노들섬에서 예술을 음미하기>


의도대로 따스하고 보드라워요. 작가님의 새로운 이름과도 관련이 있어요? 

어느 정도는요. 올해 5월부터 본명인 ‘김수연’ 대신 ‘김아야’라는 작가 이름을 사용했어요. ‘아야’는 놀라는 감탄사이기도 한데 ‘순간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작품 방향과 어울렸어요. 


둥글둥글한 발음이 작품 분위기와도 딱 맞아떨어져요. 

네. 작업 방식도 비슷한 것 같아요. 설명이 필요한 것보다 관객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작업을 더 선호해요. 
 

‘Camellia’


아, 편안한 느낌 말이죠? 

그렇죠. 딱 봤을 때 어렵지 않은. 물론 작가의 말을 듣고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는 경우도 좋은데, 작가가 항상 작품을 따라다닐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작업물만으로 가닿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어요.

 

많은 느낌 중에서 ‘포근함’을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도 있어요? 

가장 먼저 이름을 붙이고 싶던 느낌이자 감정이기 때문이에요. 몇 년 전에 폭식증이 올 정도로 우울을 심하게 겪었어요. 그런데 ‘우울하다’라는 말은 참 막연한 거예요.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까 감정마다 이름을 부여하면 헤어 나오는 데 조금 도움이 된다고 해요. 가장 먼저 되찾고 싶은 감정부터 꼽아보니까 순간 '푹신한 이불에 파묻힐 때’, ‘애착 인형을 꽉 안을 때’가 떠올랐어요. 그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껴요. 
 

‘Pastel Symphony’


공통된 느낌이 있네요. ‘나만 아는 포근함’을 바깥으로 꺼내서 ‘모두에게 전달되는 포근함’으로 전환된 결과물이 곧 작업물 같아요. 

네. 어떻게 친근하게 다가갈지 고민하던 것이 여기까지 이어졌네요. ‘실’은 만드는 대로 드러나니까 조물조물 몰입하는 시간이 좋았어요. 다른 재료에 비해 섬유가 특히 더 그래요. 일기를 쓰는 것처럼 한 줄 한 줄 더하는 거거든요. 

 

‘시간의 쌓임’이 보이는 재료군요! 한편으론 부드러워서 변형이 쉽잖아요. 한 땀 한 땀 견고하게 만들어야 형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유연함’이 오히려 좋아요. 스케치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우선 실을 손에 잡아야 직성이 풀려요. 실로 느슨하게 스케치를 해보는 거죠. 풀고 짜고 다시 풀고 짜고. 그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니까 많이 ‘시도할 수 있는 소재’라는 걸 알게 됐어요.
 

‘우연히 그 곳’


신기했던 점은, 똑같은 털실을 사용해도 다 다른 형태라는 점이에요. 눈사람처럼 동그랗게 쌓기도 하고, 동물의 꼬리처럼 한 가닥 한 가닥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해요. 합쳐 놓으면 조화롭고요. ‘조합’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요? 

‘질감’이요! 실이 하나로 길게 이어져 있잖아요. 그런데 잘라서 단면을 봤을 때와 그냥 구부렸을 때의 느낌은 전혀 달라요. 모아 놓고 보면 또 다르고요. ‘질감’은 촉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시각으로 감각하는 경험이에요. 그래서 여러 질감을 만들고 오묘함이 보이도록 합쳐요.
 

‘능선’


아! 털실도 물감 같네요. 

맞아요. 물감을 섞는 것처럼 실도 섞을 수 있어요. 자르면 보통 더 진해지죠. '초록’도 다 같은 초록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어요. 
 

‘안식의 곡선’


다람쥐처럼 소동물이 나오는 작품도 눈에 띄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동물도 있어요?

털 많은…

 

아하하. 어쩌면 당연한 질문을 했네요. 모두 폭신폭신한 질감이죠? 

하하. 사실 식물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지만, 작품으로 가져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너무 캐릭터 묘사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됐거든요. 그러다가 나무 안에 집을 만들어 사는 동물이 나오는 다큐를 접하고 나서 바로 ‘이건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동물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나 파묻혀 있는 듯한 장면이 있군요.

네. ‘둘러싸인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 있잖아요. 나무 안이나 기둥은 동물뿐만 아니라 버섯처럼 작고 낮은 존재도 보호해 주거든요. 비슷한 느낌을 작업에서 드러내려고 했어요. 
 

‘Small Island’


작업실 외에 자주 가는 공간도 있어요? 영감이 떠오르는 곳이라든지. 

남산에 자주 가요. 나무로 만든 터널처럼 둥글게 우거진 곳도 좋아하고요. 이번 여름부터는 활 쏘러 산속에 가요. 

 

와, 활이요? 멋진데요. 자연과 연결되지만 작업할 때와 상반되게 동적인 행위 같아요. 

맞아요. 하하. 작업할 땐 열 몇 시간씩 앉거나 서 있으니까 나머지 시간은 활동적으로 보내고 싶더라고요. 과녁까지 1백50미터 정돈데, 활시위를 당길 때 뻥 뚫린 공간이 시야에 들어오는 점이 가장 매력 있죠. 
 

홍건익 가옥에서 열린 개인전 <반짇고리> 전경


안전하면서도 어디선가 바람이 통과하고 어딘가 개방된 상태. 작가님이 좋아하는 공간을 늘어놓고 나니까 작업 세계와도 일맥상통한 면이 있어요. 

그런가요? 좋아하는 전시 공간도 왠지 비슷한 것 같네요. 한옥 같은 목재 건축과 섬유가 잘 맞아요. 자연물과 작업물이 구분이 안 될 만큼 어우러질 때 효과가 극대화되죠. 지난 7월에 필운동 홍건익 가옥에서 한 전시도 그랬어요.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건물이 세 채로 나뉘어 있는데, 창문을 다 열면 전체 풍경이 한눈에 다 보이는 점이 좋았어요. 


재료가 입체적이라 그런지 개별 작품도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져요. 캔버스처럼 면적이 한정되어 있지 않으니까 끝맺는 시점이 언제일지도 궁금해요. 

작업 초기에는 저도 그 점이 어려웠어요. 빈 것을 못 참아서 꼼꼼하게 만지다 보니까 동시에 무한히 커질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작업을 할수록 표현하고 싶은 바가 뚜렷해졌어요. 그 뒤로는 크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말하려 했던 걸 다 하면 마무리해요. 
 

‘감정씨앗’


실을 재료로 쓰면 완성도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아요. 최근에 취재차 방문한 섬유 공예 전시장에서 알게 됐어요. 아주 예전부터 ‘섬유 예술은 완성도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하던데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맞아요. 사실 저뿐만 아니라 많이들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프레임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도 해봤어요. 캔버스는 어떻게 비우고 채우는지에 따라 완성도의 높고 낮음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섬유는 옷에도 쓰이는 아주 친근한 소재이기 때문에 더 그런 이야기를 들어 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섬유의 형태 문제는 아니에요. 석고, 금속을 결합하거나 종이에 풀을 먹이고 딱딱한 틀을 구축해서 밀도를 올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보완점도 찾고 있어요. 
 

‘낙화’ 중 일부


소재가 친근해서 만지지 않아도 느낌이 전달되지만, 그만큼 의견도 다양한 것 같네요. 최근에 꽂힌 생각이나 주제는 뭐예요? 

사랑. 보통 미디어에서 ‘사랑’은 좋게만 그려지는데,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초과하거나 결핍되거나. 거기서 파생된 외로움도 있을 테고요. 그러면서도 따뜻함이 공존하는 감정인 것 같아요. 
 

‘낙화’


공감해요.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이 돼버려서 그렇지, 사람마다 그 방식은 다르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은 맛있는 걸 사주는 게 사랑의 방식이고 또 어떤 사람은 다정한 말을 건네는 게 사랑의 모습이라고 믿을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작업과 연결되는 감정이에요? 

네. ‘낙화’라는 붉은색 작품이 있어요. 사랑에 관한 기억을 담았는데, 그게 시작점이에요. 

 

‘포근함’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질지도 모르겠어요. 작가님이 표현하는 사랑은 어떤 색일지 참 궁금하네요. 

하하. 저도 어떨지 궁금해요. 이전보다 강렬한 색감을 많이 써보고 있어서 지금은 중화하는 과정이랄까요. 내년 하반기에 열 개인전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 김아야 작가 관련 전시 NOW

전시 | 그룹전 <입체와 평면 사이: Speaking of dimensions>
장소 |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30길 14, 갤러리 프로젝트 케이
일정 | 2023. 12. 16~2024. 1. 16

에디터 원윤지
Tag
인터뷰
김아야
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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