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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내는 도깨비처럼, 스페이스깨비(@spacekkabbi)는 깊게 잠들어 있던 한국 설화 ‘도깨비와 푸른 돌'을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깨웁니다. 광활한 디지털 우주를 배경 삼고, 등장인물은 신비로운 빛깔과 질감의 3D로 빚어내죠. 스페이스깨비 버전의 민담 또한 계속 꿈틀거리며 세상에 전해질 겁니다.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는 영원히 살아 숨 쉬니까요.

올 초부터 작가님 작품을 보고 호기심을 키웠어요. 인터뷰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해외를 오가며 활동 중이신데,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다학제 아티스트(Interdisciplinary artist) 스페이스깨비입니다. 2018년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 정보디자인 석사 졸업 후, 펀딩 프로그램 ‘Stimuleringsfonds’에 선정돼 2년간 네덜란드에서 활동했어요. 지금은 기회가 닿는 곳에서 경계 없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2월 달력이 스케줄로 꽉 찼다고 들었어요. 최근엔 어떤 일로 바쁜가요?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더넥센유니버시티의 대형 미디어 월 작업이에요. 넥센타이어의 이성경 연구원과 협업 중이죠. 8K 해상도로 완성해야 해서 진행이 더딘 편이지만, 되도록 올해 안에 끝내려고 열심히 달리고 있어요.
작가님 작업의 모티프가 된 ‘도깨비와 푸른 돌’과의 인연이 궁금해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네덜란드와 한국, 양국에서 전시하며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가 많았어요. 대형 설치와 미디어 작업을 병행하는 방식을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였죠. 리프레시 차원에서 한국의 이곳저곳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요. 전남 곡성 여행길에 섬진강 ‘도깨비 마을’이란 곳에 멈춰 서게 됐어요.
아무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는데, 마치 판타지 드라마처럼 스르륵 가이드가 나타나선 ‘도깨비와 푸른 돌’ 설화를 너무나 생동감 있게 들려주는 거예요. 홀린 듯 빠져 들었죠. 내일이 되면 이곳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게 곧장 작업실로 돌아와 가상의 ‘돌’을 만들어낸 게 스페이스깨비의 시작이죠. 3D 작업을 시도해 보고 싶단 생각이 곡성에 다녀온 뒤 확고해졌어요.

작가님 버전의 이야기는 원작과 무엇이 다른가요?
원작은 효자 ‘마천목'이 아픈 어머니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매일 강으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면서 시작돼요.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해 망연자실한 천목이 물속에서 유영하는 ‘푸른 빛'의 돌을 발견하고, 홀린 듯 집으로 들고 오게 되죠. 그날 밤 수많은 도깨비가 천목을 찾아와 ‘그 돌은 우리의 ‘대장'이며, 돌려주기만 한다면 어떠한 소원도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저는 지구에 더 이상 생명체가 살기 힘들어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삼았어요. 과거 정처 없이 강물을 떠돌던 대장 ‘푸른 돌'은 데이터의 물결을 따라 공허한 디지털 우주를 유영하고, 도깨비들은 어김없이 대장을 소유한 인간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상상하면서요.
캐릭터는 크게 ‘깨비’(도깨비), 인간 ‘마하니’(마천목의 후손), 대장 ‘푸른 돌’이 있습니다. 앞으로 러브깨비, 뮤직깨비 등 다양한 깨비와 마씨 캐릭터가 등장할 예정이에요.
“다양한 분야의 매체를 탐구하고 실험하면서 작업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어요. 스스로 3D 아티스트가 아닌 다학제 아티스트로 소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스페이스깨비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플랫폼'이라고 생각해요”
관람객들이 깨비나 마하니 캐릭터를 친근하게 생각할 것 같아요. 동심을 건드리는 느낌이 들거든요. 실제 반응은 어떤가요?
글쎄요. 각자 다르게 느끼는 것 같아요. 우주를 떠다니는 깨비를 보고 무서워하기도, UFO에 치이는 장면을 보고 웃는 사람도 있는 걸 봐선요. 내년에는 좀 더 전시를 많이 해서 다양한 반응을 접해보고 싶어요. 구전 설화가 베이스인 만큼 이 이야기가 다양한 문화권의 여러 사람에게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작업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그동안 전통을 현대로, 미래로 그리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에 대해 꾸준히 고민해 왔어요. 석사 논문도 한국의 전통 음악을 시각화하는 방법에 관해 썼죠. 지금의 작업도 그 연장선인 것 같아요. 다만 방식이 좀 더 과격하고 급진적이죠. 도깨비와 푸른 돌의 존재를 메타버스의 세계로 던져버리기로 했으니까요.
여전히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뾰족한 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계속 시도 하다 보면 나이가 들어서는 조금이라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작품에 쓰는 색감이 신비로워요. 특히 ‘푸른 돌’ 오브젝트가 그렇죠. 푸른색의 단면을 여러 각도로 조명한 느낌이랄까. 좋아하는 색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푸른’이라는 단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이기도 해요. 영어로는 ‘Blue’로만 번역되지만, 한글의 ‘푸른’은 Blue뿐 아니라 Pink, Cyan, Purple, Green 등 다양한 빛을 품고 있어요. 그래서 돌 오브젝트를 만들 땐 질감 표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여러 색과 재질을 섞어 새로운 텍스처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첫 NFT 판매작을 기억하나요?
‘dazzling light of love’라는 작품일 거예요. NFT 거래소 오픈씨 opensea에서 진행했고, 별 기대 없이 올렸는데 바로 판매돼 정말 기뻤죠. 한국에는 도깨비가 소원을 이뤄준다는 미신적 믿음이 있잖아요. 제 3D 오브젝트를 NFT로 소유하는 것이 이 믿음과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비트코인 시장이 ‘빙하기’가 된 뒤로 민팅을 안 한 지 오래되긴 했지만, 조만간 파운데이션 foundation에서 다시 선보일 계획이에요.
한국에선 NFT 시장을 바라보는 의견이 분분해요. 그 세계를 경험한 작가님이 보기엔 어떤가요?
디지털 아트를 작업하는 사람에게 판매 루트는 아직 NFT 뿐이에요. 서서히 자리잡을 것으로 생각해요. 길게 보려고 합니다.
디지털 패션 브랜드 yearzero를 론칭했고, 해외 뮤지션 테레즈 Thérèse와도 작업했죠. 과정은 순조로웠나요?
yearzero는 STUDIO POPOPO를 운영하는 박석 작가(@studiopopopo)와 함께 했어요. 분업이 잘 되어서 그는 네덜란드에 있고 저는 한국에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굉장히 매끄럽게 진행했죠. 즐겁게 작업해서인지 반응도 좋았고요. 캐릭터 ‘마하니'도 여기 옷을 입혀요.
테레즈(@tcommetherese)와의 협업도 정말 즐거웠어요. 그녀가 보내준 음원을 들었는데, 일단 곡이 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참 다정한 사람이에요. 작업 의뢰를 받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많은데, 저의 작업 과정을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는 따뜻한 사람이었죠.

75년 역사의 일본 패션지 소엔 SO-EN에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로 소개된 경험도 특별했을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 DM으로 ‘소엔'의 에디터인데, 잡지에 싣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예전에도 즐겨 보던 패션지라서 정말 기쁘고, 영광이었죠. 앞으로 더 열심히 작업하고 발전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반대로 작가님이 주목하는 국내외 아티스트는 누구인가요?
소엔의 특집 기사에 저를 추천해 준 3D 아티스트 유카리(@yu.kari7)요. 아름다운 색채와 세밀한 디테일이 정말 훌륭해요. 판타지와 현실을 조합해서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내는데, 볼 때마다 감탄하죠. 존경합니다!

3D, AR 등 디지털 기술을 녹여낸 아트를 더 많은 사람이 즐길 만한 아이디어가 있을까요?
아직은 사람들에게 3D, AR 콘텐츠를 소개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관련 워크숍이나 이벤트, 전시 등이 더 늘어나면 좋지 않을까요? 가능하면 학교와 교육 기관이 협력해 연령대가 다양한 학생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방법일 것 같고요.
3D 작업 외 관심 가는 건요?
올겨울은 쉬면서 ‘소리’와 관련된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요. 학사, 석사 둘 다 소리를 시각화하는 작품으로 졸업했는데, 지금 3D 작업을 하고 있네요. 하하.
한국의 소리와 악기가 결합된 공연에 작가님의 아트워크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상상해 봤어요. 다른 예술 분야와의 협업에도 열려있나요?
언제나요. 음악, 무용, 영화,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매체를 탐구하고 실험하고, 관련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면서 작업 스펙트럼을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싶어요. 스스로 3D 아티스트가 아닌 다학제 아티스트로 소개한 이유도 이 때문이고요. 스페이스깨비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플랫폼'이라고 생각해요. 올해도 도깨비방망이를 두드리듯 계속 새로운 결과물이 나오고 있고, 전 항상 즐겁게 작업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현실 세계에서의 작가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취미는 무엇이고, 어떨 때 행복감을 느끼나요?
‘고립'을 즐기는 사람인 것 같아요. 요즘엔 바빠서 손도 못 대고 있지만, 혼자 게임하는 걸 좋아합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예요. 전에는 행복에 대해 고민한 적이 많았는데, 별거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저와 오래오래 봤으면 좋겠습니다.
12월 31일은 뭘 하며 지낼 건가요?
그땐 가족과 함께 여행지에 있겠네요! 제가 장녀고 동생이 셋인데, 막내가 안동에 한옥을 예약해 놨거든요.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