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s
스톱모션의 아늑한 세계
정지의 움직임
스톱모션 작가이자 프로듀서 ‘Clicker(@Clickerby)’는 사진을 이어 붙여 움직임을 구현해요. 평균 3천 장, 2분의 영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분량이에요. 의도한 대로 움직임을 조금씩 바꿔가며 촬영하고, 프레임이 넘어가는 타이밍을 조절해 완성합니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이라 아날로그 질감이 흠씬 느껴지죠. 디지털 세상과 상반된, 그 포근한 매력을 좇는 구독자가 벌써 45만! 따뜻한 스톱모션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직접 듣고 왔어요.
‘살림 다 부숴먹는 칠면조 요리’
댓글을 보면 ‘사운드 맛집’이라는 이야기가 많아요. 타이밍 맞게 떨어지는 소리가 절묘해요. 감각 중 청각에 가장 민감한 편인가요?
음, 그런 것 같아요. 유튜브 시작 전에도 ASMR만 주로 들었어요. 잠을 잘 자지 못했던 적이 있어서요. 그걸 자꾸 듣다 보니까 직접 만들 때도 ‘소리’에 되게 집중하게 돼요. 주로 듣기 편한 걸 찾아 넣고요.
채널명인 ‘Clicker’도 소리에서 출발한 단어 같네요.
사실 채널 딱 시작할 때 영상을 먼저 만들었어요. 이름은 그다음이었죠. 작업을 끝내고, “이리 와봐!” 하며 가족을 불러 이름 후보 다섯 개를 보여줬어요. ‘Clicker’는 그중 하나고 ‘찰칵 소리가 들린다’는 뜻이 있어요. 촬영하는 몇십 시간 동안 셔터음을 들으니까 어울리겠더라고요. 엄청 대단한 이유는… 아닌 것 같아요. 하하.

정말 그렇네요. ‘찰칵’ 소리가 완성본엔 없어서 관객은 못 듣고, 작업하는 ‘나’에게만 들리겠네요. 첫 영상부터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지금까지 누적된 조회수가 1천5백만이에요!
진짜 얼떨떨했죠. 새벽 1~2시쯤 완성하고, 별 기대 없이 업로드를 바로 했어요. ‘자, 작업? 끝!’, ‘채널명? 결정!’, ‘업로드? 완료!’ 이런 식으로요. 올린 지 일주일 만에 10만 명이 몰려서 오류 난 줄 알았어요. 재촬영도 많이 해서, 어떻게 보면 연습 과정도 녹아 있는 영상이에요. 중고 멜로디언을 톱질하면서도 ‘나 뭐하나. 그래도 누군가에겐 재밌지 않을까’ 싶었어요. 지금도 안 믿겨요.
‘반 고흐의 저녁 식사’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은 어떤 거예요? 몇 년 전, 한 인터뷰에서는 ‘반 고흐의 저녁 식사’를 꼽았잖아요.
지금도 그래요. 조회수나 댓글도 신경 쓰인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작업할 땐, 조회수는 일단 포기하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거 만들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많은 아티스트 중 왜 ‘반 고흐’였어요?
고민됐죠. 색과 선이 강렬해서 모든 사람이 선호하는 화풍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생각해 보면, 자기 색깔이 아주 뚜렷하다는 얘기잖아요. 영화 <러빙 빈센트>도 보고 정보를 깊이 찾아봤어요. 사연이 와닿아서 저만의 스토리로 더 풀고 싶었죠. 실제로 물감 먹고 살았다는 말도 있고…

오! 너무 재밌어요. 역시 ‘고흐’는 상상의 여지가 많네요. 식사뿐만 아니라 다른 장면을 상상해 본 적도 있겠어요.
그렇죠. 제 영상에선 실제 손이 등장하다가, 나중엔 그림이 돼요. 고흐가 그림밖에 몰랐다고 하잖아요. 그 세계에 ‘동화’되는 느낌이면 좋겠더라고요. 그림만 있는 자기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저도 그 작품으로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됐어요. 메이킹 영상을 보면, 바닥도 물감으로 다 칠했다고 해서 인상 깊었어요.
거의 등짝 맞을 뻔했죠(함께 웃음이 터진다). 가족과 살 때라 싹 비닐 랩핑을 하고 그렸어요.

달걀을 깨자 레고로 표현한 노른자가 움직인다.
고생스러운 만큼 디테일이 남달라요. ‘디테일 장인’이라는 반응도 정말 많고요. 물이 끓으면 냄비가 살짝 들린다든지, 달걀을 깨면 노른자가 탱글탱글 움직인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실제 모습을 항상 찾아봐요. 물 끓는 장면은 실제와 애니메이션 둘 다 챙겨보고요. 디즈니, 픽사에서 묘사하는 방식도 많이 탐구해요.
레퍼런스를 정말 많이 보시는군요.
맞아요. 솔직히 활동 초반에는 제가 의도치 않았던 것까지 좋게 봐주신 적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디테일을 더 챙기게 돼요. 흘리고 차마 못 치운 건데…
하하. 매끈하지 않은 점들이 오히려 자연스러움을 더했나 봐요. 섬세하게 보다 보면, 계속 디테일을 추가하게 될 거 같은데, 작업 중에 ‘이쯤이면 완성이다’ 싶은 시점이 있을까요?
우선 큰 흐름은 스토리보드로 그려 놔요. 반면에 ‘조금 힘없게 걷는다’는 식의 세심한 설정은 즉흥으로 만들어요. 괜찮은 표현 나올 때까지는 재촬영을 하고요. 계속 찍으면 결과물이 더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분명 나아져요.

와, 그럼 만족할 때까지 촬영하는 거예요?
네. 일단 ‘내 마음’에 들어야 결과물도 좋더라고요. 만약에 안 되는 경우면, 다른 방법을 찾아서라도 무조건 한다고 생각해요. 안 된다는 말이 스스로 안 나오도록.
될 때까지 하는 건 ‘한 문장’으로 압축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되돌아보면, 저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는 상황이어야 도전했던 것 같은데, 작가님은 어땠나요?
저 그게 있어요. 승부욕! 자극받으면 절반 이상은 해야 돼요. 학교 다닐 때 공모전도 상 탈 때까지 계속. 1안만 요구해도 2안까지 준비했어요.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누군가를 만족시키려면 더 준비하자!’ 라는 마음이었어요. 물론 떨어지기도 많이 떨어졌어요. 그럴 때면 나 안 뽑은 저 사람들이 잘못된 거라는 생각으로 정신 건강 챙기고 말이죠. 스톱 모션 시작할 때도 그랬어요. 일사천리로 컴퓨터부터 카메라까지 딱딱 구하고. 누가 뭐라 하든 찍어보자. 일단 하자.

스톱모션, 집념이 필요한 장르인 건 QnA 영상에서도 느껴져요. 제작법을 A부터 Z까지 다 짚어주셨는데, 혹시 부담은 안 됐어요? 영업 기밀 아닌가 싶었거든요.
하하. 실은 기밀이랄 것이 없어요. 고독. 노동. 고독. 노동. 반복이죠. 실제로 힘드니까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도 봤어요. 그래서 동료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저는 계속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끈질기게 했던 것 같아요.
창작 욕구가 추동해야 작업도 지속되는 거네요. 요즘엔 표현할 수 있는 수단도 참 많고, 장르도 아주 세분된 시대잖아요. 스톱모션에 특히 매료된 계기가 있을까요?
‘아드만 스튜디오’라고 애니메이션 ‘윌리스와 그로밋’ 만든 곳에서 열었던 전시에 갔어요. 작업 과정을 다 공개했는데,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더라고요. 찰흙에 남은 손가락 자국이나 손때가 정말 다 묻어 있어요. 레고, 클레이, 인형처럼 재료가 다양한 만큼이나 다른 느낌도 좋고요. 아날로그한 매력이 디지털 세상과 또 다르게 느껴졌어요.

작가님도 하나의 소재 보다는 여러 개를 쓰는데, 재료 선택할 때 기준이 있어요?
아, 특정 브랜드나 상황을 보면 어울리는 재질이 떠올라요. 예를 들면, ‘연세 우유’ 프로젝트는 부들부들한 천 재질이 괜찮겠더라고요. 이거 보여드릴게요. 촬영 끝나서 지금은 팔을 다 뗐지만…
이 친구 봤어요! 보풀도 살아 있어서 포슬포슬하니 따뜻한 느낌. 다양한 재료를 써서 그런지 앵글도 여러 상황으로 확장되는 것 같아요. 영화 <플레전트빌>에서 영감받았다고 밝힌 작품도 그렇고요.
재료를 통일해볼까 고민도 있었지만, 아직은 여러 시도를 더 해보고 싶어요. 긴 호흡의 스토리가 담긴 ‘단편 애니메이션’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흑백이 컬러가 되는 순간’도 그래요. 4년 전부터 컨셉을 메모해 뒀는데,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올해 시도해 봤어요.
<플레전트빌>에서 영감받은 ‘흑백이 컬러가 되는 순간’.
영화도 자주 보는 편이에요?
영화, 애니메이션 모두 좋아해요. 미장센 화려한 신은 꼭 저장해요. 특색 있는 감독을 정해서 다 몰아 보는 편이고요. 영화 안에서 그 사람의 분위기 찾는 걸 좋아해요. 그들처럼 나만의 색깔을 발견하고 싶기도 해요. 라스 폰 트리에, 자비에 돌란이 지금 생각나네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도 좋아해서 저기 포스터도 붙여놨어요.
저 그 영화 봤어요. 주인공이 흰 산등성이를 막 올라가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영화로 끝내는 게 아니라 아이슬란드에 직접 가보고 싶네요. 벌써 12월인데, 언제 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