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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의 푸른 방 

 

‘그래픽 디자인’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나요? 포스터? 책 표지?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moonsickgang)의 전시 현장에 들어서면 그 고정 관념을 접게 될 거예요. 파운드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첫 개인전은 그의 작업실을 옮겨놓은 것 같아요. 누군가 흘리고 간 듯한 ‘인생네컷’ 사진이 바닥에 놓여 있는가 하면, 인쇄소에 있을 법한 거대한 종이 더미가 공간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죠. 푸른색으로 가득 찬 전시장에서 디자인을 어떻게 다양한 조형물로 풀어낼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 그와 줌 화면 너머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 강문식 그래픽 디자이너 미리 보기 

- 한국, 네덜란드, 미국에서 공부했고, 지금은 서울에서 주로 활동해요. 

- 직접 디자인한 책 중에서 2023년엔 <살라리오 미니모>가, 2020년엔 <ㅁ>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됐어요. 

- 부산현대미술관, 문화역서울 284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했고, 광주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과 디자인 작업을 함께했어요.

 

전시 <sunkiss>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 Moonsick Gang and FOUNDRY SEOUL, Photo: Kyung Roh


‘그래픽 디자이너의 전시’라고 하면 평면 작업을 떠올리기 쉽잖아요. 그런데 현장에선 평면이 아닌 입체 작품이 많았어요. 의도된 확장인가요, 새로운 시도인가요?

단순히 지금까지의 포트폴리오를 나열하고 싶진 않았어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나무 조각, 실크 스크린으로 인쇄한 알루미늄, 종이 더미 등은 모두 을지로에서 익숙하게 본 것들이에요. 첫 개인전부터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단 디자이너로서 평소 다루는 영역 안에서 재료와 소재를 찾으려 했어요. 

 

전시 오픈일에 "큰맘 먹고 준비했다"라고 말한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어떤 '큰마음'으로 전시를 기획했는지 궁금한데요?

인쇄 작업을 주로 하다가 전시장이라는 입체적인 공간이 주어져 얼마나 디자인 작업을 확장할 수 있을지 고심했어요. 작가의 관점보다는 ‘디자이너로서’ 전시 공간을 의뢰받았다고 가정했죠. 제가 추구하는 방향을 디자인 결과물이 아닌 '디자인하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려다 보니 완전히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어요. 

 

‘almost 02’, ‘typeset 01’, Courtesy of the artist, Moonsick Gang and FOUNDRY SEOUL, Photo: Kyung Roh


그래서인지 어떤 작업물이 나오기까지의 비하인드 신이나 작업 과정을 옮겨 둔 듯했어요. 인쇄소에서 들릴 법한 소리가 전시장에 흐르거나, 미술관 벽에 글씨를 붙인 뒤 남은 시트지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있었죠. 

전시를 준비하면서 을지로의 작은 공간을 여러 곳 빌려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요. 나무 팰릿에 종이 더미를 쌓은 작품 'almost 02'와 'typeset 01'은 인쇄소가 밀집한 을지로를 오가며 본 광경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좁은 길목에 종이를 막 쌓아둔 형태가 꼭 조각 작품처럼 보였거든요. 진짜 조각이라면 보존되겠지만, 결국 인쇄소에서 재료로 쓰여 책으로 형태가 바뀌잖아요. 물질의 속성이 고정되지 않는 점이 재밌어서 이번엔 전시장에 작품으로 붙잡아 두려 했어요. 

 

종이 더미를 나염 천으로 감싸 만든 조각, ‘almost 02’, Courtesy of the artist, Moonsick Gang and FOUNDRY SEOUL, Photo: Kyung Roh


그 종이 더미는 전시가 끝나고 실제 책으로 제작할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전시한 작품을 다시 창작의 소재로 활용하는 점이 흥미로워요. 어떤 책으로 다시 만들어질 예정인가요?

이한범 편집자님과 기획하고 있어요. 전시장에 가면 글 일부를 읽어볼 수 있는데요. 새롭게 꾸릴 책 역시 단순히 이번 전시를 기록한 도록이 아니라 개별 창작물이자 협업 결과물이 될 거예요. 곧 나올 책 외에도 전시장 곳곳에 협업의 흔적이 묻어있어요. 나염 천은 패션 디자이너와, 전시장에 흐르는 소리는 음악가와 작업했죠.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만나는 계기를 만드는 것도 전시 목표 중 하나였거든요.

 

구름의 구성과 형상은 그 자체로 강문식의 디자인 개념과 겹친다. 땅 아래에서 보자면 구름은 끊임없는 무빙 이미지이지만, 실상 그것은 작은 입자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형되고 또 결국에는 다른 형태로 전환되어 사라진다. - 전시장에 비치한 텍스트 일부

이한범 미술 비평가, <엔지니어로서의 디자이너> 중에서

 

’almost 01’, image by Moonsick Gang


전시에 쓴 재료나 작업 과정은 작가님의 과거 작업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작업 방식에 일관된 흐름이 있나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재단한 것처럼 딱 떨어지는 형태가 아니라, 작은 시도를 뒤섞고 충돌시키는 방법에 가까워요. 지금 전시 중이기도 한 ‘구름’에 비유할 수 있겠네요. 구름은 멀리서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미세한 물방울 입자가 무수히 결합한 상태잖아요. 제 작업도 결과물 하나만 두고는 특별한 이야기를 할 수 없어도, 크게 보면 아웃라인이 보이죠. 

 

전시장을 채운 푸른색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색을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빛바랜 리플릿에서 발견한 색이에요. 예전에 미국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 갔다가, 한 행인이 갑자기 지도 리플릿을 건네며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을 알려줬어요. 그걸 집 베란다에 붙였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푸르스름하게 변했어요. 색이 바랬다는 건 낡았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다르게 보면 빛이라는 에너지가 충만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뜻이기도 해요. '색의 변화에 의미를 입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푸른색을 이번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어요. 

 

푸른 지도 리플릿, Courtesy of the artist, Moonsick Gang and FOUNDRY SEOUL, Photo: 박정하


푸른색과 전시 제목 <sunkiss>에서 연상되는 컬러는 상반된 느낌인데요? 

제목만 봐선 빨갛고 노란 강렬한 색이 떠오를 텐데, 막상 전시장에 도착하면 푸른색만 있어서 의아할 거예요. 전시 공간에 들어서기 전과 후에 펼쳐질 반전에서 재미를 느껴보셨으면 하는 의도가 있어요. 

 

좌: 푸른 물감으로 칠한 사과 
우: 글자 작업을 한 뒤 남은 시트지를 촬영한 사진 ⓒb.frame
전시장 바닥에 둔 ‘인생네컷’을 모티프로 한 사진 ⓒb.frame


전시장 바닥에도 재밌는 포인트가 많아요. 

사실 다른 작품에 비해 바닥에 놓인 작은 오브제와 사진이 저라는 사람과 더 가까운 것들이에요. 작업할 때 제 결과물을 마주할 사람들의 상황과 경험을 상상해 보는 습관이 있거든요. 특히 ‘인생네컷’의 경우, 제목이나 설명은 없지만 단순히 ‘본다’는 행위 이상으로 관객의 행동을 더 끌어내는 장치입니다. 사람들은 땅바닥의 사진을 보려고 고개를 숙일 거예요. 그러다 누군가 떨어트린 건 아닐지 고민하거나, 이상하다고 느끼기도 할 테고요. 형체를 알 수 없게끔 편집된 이미지라 더 들여다보려고 몸을 기울이거나 쪼그려 앉는 등 두세 가지 스텝을 더 거치겠죠.

 

작가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인생네컷’ 모티프의 사진, Courtesy of the artist, Moonsick Gang


실제로 한 관객이 ‘인생네컷’ 작품을 누군가의 분실물인 줄 알고 갤러리 관계자에게 알렸다는 후기가 있더라고요. 

정말요?(웃음) 전시를 준비하면서 '인생네컷'이라는 소재를 발견했을 때 정말 기뻤어요. 동시대 한국을 가장 잘 드러내는 현상이자 상징적인 디자인 레이아웃 같았거든요. 페인팅이나 조각처럼 이미 있는 형식 말고도 저만의 방식으로 사물을 해석하고, 전시의 일부로 끌어들인 물건이에요. 뜬금없이 바닥에 있는 걸 보고 관객이 반응하면, 저는 그 반응으로 관객의 이해도나 관심도를 역으로 추측할 수 있었죠.

 

자세히 보면 ‘개미 그래픽’이 보이는 홈페이지, moonsickgang.com 


작가님의 홈페이지 속 움직이는 개미 그래픽도 유저가 특정 행동을 하게 만드는 비슷한 장치 같아요. 

학교 다닐 때 HTML로 만든 웹사이트인데요. 움직이는 개미를 클릭해야 콘텐츠로 연결이 돼요. 홈페이지 사용법을 묻는 DM을 받을 때도 있는데, 저는 방문자가 유심히 화면을 살펴보고 다음 과정을 찾아나가며 흥미를 갖길 바란 거죠. 

 

홈페이지를 보니 과거 한 인터뷰에서 “특이한 걸 좋아한다기보다 평범함 안에서 재밌는 걸 찾는다”고 답한 문장이 떠올라요. 최근에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늘 그런 듯해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대상에서 특이한 구석을 발견하는 재미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특별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관찰한 끝에 각자 나름의 특별한 면을 찾는 게 즐거워요. 취향이 좀 그런 거 같아요. 음식으로 치면, 자극적인 향신료 대신 오래 곱씹어야 알 수 있는 맛에 비유할 수 있겠네요. 

‘sunkiss 06’, Courtesy of the artist, Moonsick Gang and FOUNDRY SEOUL, Photo: Kyung Roh


그런 성향이 디자인 과정과 직업관에 반영되기도 하나요?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익숙한 조건을 비틀고 활용하거나, 결과물이 나온 이후 영향받을 사람들의 관계성도 생각하면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재밌어요. 세상에 없던 걸 창조하기보다 사회에 반응하며 실용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에 가깝죠. 그래서 누군가의 피드백이 있을 때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3월 8일이면 전시가 마무리돼요. 작가님에게 의미가 남달랐을 첫 개인전 이후엔 어떤 시간이 기다리고 있나요?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아이디어의 재료가 될 만한 대상을 수집해 보려고요. 한동안 호기심 대신 사회적 역할이나 비즈니스에 연관된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제동을 걸어보는 중이에요. 평소 활동하던 서울이 아니라, LA로 출장을 와있는 지금처럼 새로운 자극을 찾아다닐 거예요. 

 

<sunkiss>

🗓️ ~3. 8
🏛️ 바이파운드리 @foundryseoul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23, 파운드리서울 1층 
🎨 작가 인스타그램 @moonsickgang

에디터 원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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